삼성 성과급 논쟁이 던진 질문…“돈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보다 사회적 합의의 기준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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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은 단순히 한 기업의 노사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도체 초과 이익을 누가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노동자와 주주와 협력사와 지역사회까지 얽힌 한국 자본주의의 오래된 쟁점을 다시 끌어올렸다.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 사안을 경사노위가 직접 다룰 의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노사 자치 원칙 안에서 풀어가되 필요하다면 제3의 조정이나 중재를 모색할 수 있다고 봤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반도체 사업부의 영업이익 배분 문제다. 노조는 막대한 이익을 낸 만큼 성과급 산정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주주와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기업의 이익은 주주의 몫이라는 원칙을 강조한다.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관점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나온다. 반도체 라인의 성과가 정말 정규직 직원만의 기여로 만들어졌느냐는 문제다. 협력사 노동자와 과거에 그 기술 기반을 쌓은 노동자와 지역 인프라와 국가 지원까지 고려하면 이익 배분의 경계는 훨씬 복잡해진다.
김지형 위원장은 이 문제를 우선 노사 자치의 영역으로 봤다. 기업 단위의 임금과 성과급 교섭은 원칙적으로 노사가 합의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이 사안을 단순한 사내 교섭으로만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삼성전자는 국민 기업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한국 산업과 자본시장과 고용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노사 어느 한쪽을 향한 무분별한 비난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합의 과정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핵심은 조정과 중재다. 노사 교섭이 견해 차이 때문에 난항을 겪고 파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회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 특히 반도체 라인 가동 중단은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리스크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노사가 동의하는 범위 안에서 객관적 제3자가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절차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재는 당사자가 중재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단순한 권고보다 강하다. 김 위원장은 삼성 백혈병 갈등 조정과 준법감시위원장 경험을 떠올리며 극단적 갈등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면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형 위원장은 대법관을 역임한 뒤 2018년 삼성 백혈병 사태의 조정위원장을 맡아 11년간 평행선을 달리던 합의를 이끌어 냈고, 2020년 초대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을 맡아 삼성의 무노조 원척 철회, 4세 승계 포기 등을 이끌어 냈다.
성과급 논쟁의 본질은 주주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충돌이다. 주주자본주의 관점에서는 기업의 이익은 자본을 제공하고 위험을 부담한 주주에게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대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노동자와 협력사와 소비자와 지역사회도 기업의 성과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므로 이익 배분 논의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이런 논쟁 자체가 앞으로 더 자주 등장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AI 시대에는 기업의 초과 이익이 사회 전체가 축적한 데이터와 기술 기반 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AI가 만든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도 같은 질문의 연장선이다. AI 기업이 거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막대한 이익을 낼 때 그 데이터는 특정 기업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쌓아온 자산의 성격을 가진다. 이 때문에 초과 이익을 상생기금으로 만들 것인지 AI세나 로봇세로 걷을 것인지 노동시간 단축이나 기본소득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진다. 김 위원장은 이런 문제야말로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의제라고 봤다. 지난 3월 출범한 경사노위는 AI 전환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를 주요 축으로 설정하고 'AI 전환 노사 상생위원회'를 통해 △AI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 해소 △신규 일자리 창출 △노동법적 규율 필요성 △AI 활용에 따른 초과이익 공유 방안 등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역할도 기존과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노사정 대화는 이미 주어진 파이를 놓고 노사가 권리를 다투는 방식에 가까웠다. 권리 확보와 배분을 놓고 싸우다 보니 결렬되기 쉽고 합의가 되더라도 추상적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앞으로의 사회적 대화는 미래 과제를 함께 풀기 위한 책무의 대화가 돼야 한다고 봤다. 노는 노대로 사는 사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무엇을 내놓을 것인지 고민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사노위가 새롭게 다루려는 주요 의제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AI와 노동 인구구조 변화 산업 전환 녹색 전환 통상질서 재편 같은 복합 대전환이 동시에 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AI와 노동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꼽았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다만 그 충격은 한꺼번에 오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발생한다. 번역가와 디자이너와 프리랜서처럼 조직화되지 않은 직종은 항의할 사용자도 없이 조용히 일감이 줄어든다. 대기업 노조처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보다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이 먼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AI 시대의 대응은 두 갈래다. 하나는 사회보장 시스템의 재설계다. 지금의 고용보험과 실업급여는 정규 고용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와 고용되지 않은 노동 제공자가 늘어날 수 있다. 고용을 기반으로 한 보호 장치만으로는 이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소득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보장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소득이 급감하거나 일감이 사라지는 상황을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포착하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평생 교육과 재훈련 인프라다. AI 기술은 일부 전문가만의 도구가 아니라 전 세대와 전 직종이 익혀야 하는 기본 역량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대학이 취학 인구 감소로 소멸을 기다리는 기관이 아니라 평생 교육의 거점으로 재편될 수 있다고 봤다. 단순한 정보 접근이 아니라 실제 산업 전환에 맞춘 훈련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노동시장 양극화도 경사노위가 바라보는 핵심 과제다. 김 위원장은 한국 노동의 위기를 전환 위기와 축적된 위기로 나눴다. 전환 위기는 AI와 인구구조 변화와 녹색 전환과 산업 재편처럼 새롭게 몰려오는 충격이다. 축적된 위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역 사이에 오랫동안 쌓여 온 격차다. 이 격차는 단순히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 불안정성이 커지고 장기 성장에도 부담이 된다.
정년 연장과 고령화도 중요한 과제다. 고령층의 건강수명이 늘고 기업도 숙련 인력을 쉽게 포기하기 어려워지면서 고령자 취업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령자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의 신규 진입이 어려워지는 일자리 충돌 문제가 생긴다. 또 청년 진입이 늦어지면 숙련이 다음 세대로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일자리 단절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를 ‘충돌’ ‘단절’ ‘격차’의 문제로 정리했다.
해법은 세대 간 일자리를 재배치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해외에서는 고령 숙련 인력이 기존 업무를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멘토링과 숙련 전수 역할을 맡고 청년은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의 모델도 논의된다. 고령 인력의 경험을 버리지 않으면서 청년의 진입을 막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임금과 직무를 새롭게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고령화 시대의 일자리 생태계를 다시 짜려면 이런 상생 모델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노란봉투법과 원하청 문제도 노동 의제의 중요한 축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 학자 데이비드 웨일의 ‘균열일터’ 개념을 언급했다. 기업이 핵심 기능만 내부에 남기고 나머지를 외부화하면서 통제는 유지하되 책임은 피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진단이다. 원청은 하청 노동의 방식과 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면서도 법적 책임에서는 빠져나가려 한다. 이런 통제와 책임의 분리가 다단계 하청과 플랫폼 노동과 특수고용 문제의 근본에 있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도 이런 불일치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비정규직 임금 문제 역시 단순하지 않다. 같은 일을 한다면 고용 안정성이 낮은 비정규직이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직관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기업 정규직의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이미 강한 내부자 지위를 형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양극화 해법을 밑바닥 끌어올리기, 격차 줄이기, 이동 사다리 만들기 세 가지로 나눠 봐야 한다고 했다. 하나의 처방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김 위원장이 강조한 것은 공론화다. 그는 과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을 맡았던 경험을 언급했다. 당시 원전 건설 찬반은 팽팽하게 갈렸지만 시민참여단은 충분한 학습과 토론을 거쳐 뚜렷한 의견 변화를 보여줬다. 김 위원장은 이 경험을 통해 시민사회가 생각보다 훨씬 성숙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앞으로 일자리와 AI와 고령화 같은 문제도 전문가와 노사정만의 테이블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의제는 찬반을 묻는 문제가 아니라 해법을 설계해야 하는 주관식 과제에 가깝다.
한국 노동시장은 이미 여러 전환의 한복판에 있다. AI는 조용히 일자리를 바꾸고 있고 고령화는 세대 간 일자리 충돌을 만들고 있으며 원하청 구조는 통제와 책임의 불일치를 드러내고 있다. 삼성 성과급 논쟁은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돈을 얼마나 나눌 것인가가 아니다. 성과와 책임과 위험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다. 그 기준을 만들지 못하면 앞으로 더 큰 성과가 나올 때마다 더 큰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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