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AI… MZ 샤머니즘
작성자 정보
- 김프로 작성
- 작성일
본문
■ 피플 & 스타일-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은 ‘무속·사주’‘AI 사주카페’에서 데이트 하고‘액막이 명태’ 선물로 주고 받아일 안풀릴땐 관악산 ‘개운 등산’노력만으로 성취 힘든 현대사회종교보다 개인 가치 탐구에 집중‘소소한 기쁨’으로 심리적 안정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인공지능(AI) 사주카페 ‘비나이다’에 설치된 AI 무당 ‘아미’ 모습. 수화기를 들고 질문을 하면 AI 무당이 사주풀이와 함께 부적도 만들어준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인공지능(AI) 사주 카페’. 입구에 들어서자 무속 집 특유의 향냄새 대신 대형 태블릿 PC와 키오스크가 손님을 맞이했다. 복채로 7000원을 내고 이름과 성별, 생년월일을 입력한 뒤 수화기로 AI 로봇과 연애·재물·직업 등 관심 있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자 이내 사주풀이와 함께 부적이 제공됐다. 부적에 새겨진 QR 코드를 통해 오행 분석 등 정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와 이곳을 찾은 대학생 김영호(24) 씨는 “아직 어떤 진로를 택할지 정하지 못했는데, 사주를 보니 기술이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질이라고 해 자격증 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일종의 심리상담을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교회나 성당 같은 전통적인 종교 대신 기운이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거나 사주·타로를 보는 ‘샤머니즘’이 새로운 소비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공동체에 중심을 둔 기성 종교와 달리 ‘나’라는 개인에 관심 많은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사회경제적 풍토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에도 미래를 점치는 타로 카페나 별자리 운세 등이 유행한 적이 있지만,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샤머니즘이 젊은 층에서 일종의 문화로 향유되고 있는 건 종교적 측면에서도 큰 변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SNS를 적극 활용하는 젊은 무속인 인플루언서나 이를 주제로 한 각종 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젊은 세대의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춘 것도 변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샤머니즘 유행에 불을 지핀 1등 공신은 단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다. 올해 초 무속인이 출연해 고민을 해결해주는 디즈니플러스의 예능 프로그램 ‘운명전쟁49’는 K무속 열기에 불을 질렀다. 일부 인기 출연자의 상담 예약은 이미 내년까지 마감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만신 권수진 씨는 “방송 후 많은 분들의 예약문의로 5000명 정도의 대기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돈을 주고도 점을 보기 힘들 정도로 대박이 터진 셈이다. 이후 유튜브나 틱톡에서 ‘라이브 신점’ 등 키워드를 검색하면 수십 명의 무속인이 실시간 방송을 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AI 로봇 관상가가 그려준 소비자들의 관상 초상화.
사주·명리학의 ‘개운법(운을 좋게 하는 방법)’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초 한 방송에 출연한 박성준 역술가가 “운이 풀리지 않을 때 관악산을 가보라”고 조언한 이후 실제로 산을 찾는 20·30세대가 부쩍 늘었다. 관악산 정상 인근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30분에서 1시간가량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또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화(火)의 기운이 많아 일복이 생긴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일부러 로비에 찾아가 일을 하거나 만나는 이들이 몰리고 있다.
‘혹세무민’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무속이나 사주가 급격히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비대면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과거 복채를 들고 복덕방이나 점집을 찾아가야 했던 번거로움은 사라졌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커피 한 잔 값이 안 되는 돈으로 사주풀이를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대들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액막이 명태 인형’을 주고받는다. 카카오커머스에 따르면 ‘액막이’ ‘행운’ ‘명태’ ‘부적’ ‘운테리어’ 같은 키워드를 포함한 제품 판매 등록 수는 2024년 12월 1497건에서 지난해 같은 달 2080건으로 약 39% 증가했다. 같은 기간 판매 브랜드 수 역시 282개에서 345개로 22% 늘었다.
반면 교회나 성당 등 기성종교를 믿는 젊은 신도들은 갈수록 줄고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20대 종교인은 2004년 45%에 달했으나, 2014년 33%, 2022년 19%로 낮아졌다. 30대 종교인 비율 역시 2004년 49%에서 2014년 41%, 2022년 24%로 줄어들었다. 미국 ‘내셔널 가톨릭 레지스터’는 한국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앞선 디지털 인프라를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극심한 ‘영적 고립’과 ‘기존 종교의 교조주의에 대한 피로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시장”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기성 종교가 공동체의 결속과 엄격한 교리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사주나 무속은 철저히 ‘나’라는 개인의 기질과 운명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MZ세대에게 “우리와 함께 기도하자”는 권유보다 “당신은 이런 기운을 타고났으니 이런 색깔을 가까이하라”는 맞춤형 조언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급변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풍토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취업난이나 주거 불안, 경제 위기 등 개인의 노력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많아지면서, ‘운’이라는 요소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오하아사(오늘의 별자리 운세)’ 열풍처럼 로또 당첨 같은 거창한 행운이 아니라 ‘이른 퇴근’이나 ‘좋은 반 배정’ 같은 소소한 기쁨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특징이다.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쓰레기를 줍는 습관을 “작은 운을 모으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젊은 세대는 운을 관리 가능한 자산으로 여긴다.
김호준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