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바로지금]알파고의 아버지가 들고 온 진짜 선물…‘K 문샷’ 공동 연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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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프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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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가 한국을 찾았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고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로 노벨 화학상까지 받은 세계 AI 산업의 상징적 인물이다. 한국 방문의 명분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10주년이었다. 허사비스 CEO는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 당시 이세돌 9단에게 받은 바둑판을 들고 왔다. 알파고는 한국 사회가 AI를 처음으로 피부로 느끼게 만든 사건이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은 인공지능이 인간 최고 수준의 직관과 전략을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후 딥마인드는 알파고 제로와 알파제로를 거쳐 알파폴드로 확장됐다.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AI로 전 세계 연구자 수백만 명이 활용하는 기술이 됐고 신약 개발과 생명과학 연구의 기반 도구가 됐다. 허사비스 CEO가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이유도 이 기술의 파급력 때문이다.
이번 방문의 진짜 핵심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미래의 산업 협력이다. 딥마인드는 알고리즘을 잘한다. 엔비디아는 GPU와 AI 연산 인프라를 장악하고 있다. 현대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로봇의 물리적 몸체를 가지고 있다. 이 세 축이 만나면 휴머노이드 로봇과 피지컬 AI의 실전 가능성이 열린다. 로봇은 단순히 똑똑한 소프트웨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아야 하고 바닥의 촉감을 구분해야 하고 물건의 마찰력과 무게를 감지해야 한다. 종이컵을 잡을 때와 젖은 컵을 잡을 때와 미끄러운 유리잔을 잡을 때 힘을 다르게 써야 한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로봇에게는 가장 어려운 과제다.
딥마인드가 가진 무조코 물리 엔진은 바로 이 문제를 푸는 데 쓰인다. 로봇을 실제로 수천 번 넘어뜨리며 학습시키면 기계가 망가진다. 그래서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넘어지고 일어나고 균형 잡는 법을 학습시킨다. 무조코는 로봇 강화학습 분야에서 중요한 오픈소스 물리 엔진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엔비디아 모델은 물건을 들고 옮기는 행동 계획을 담당한다. 현대차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실제 몸을 만들고 딥마인드는 물리적 인지와 학습을 제공하고 엔비디아는 연산 인프라를 제공한다. 몸과 두뇌와 연산이 결합되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 한국의 위치는 생각보다 강하다. AI를 잘하려면 알고리즘과 메모리와 데이터가 필요하다. 알고리즘은 미국 빅테크가 강하다. 메모리는 한국이 쥐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서버에 필요한 고성능 메모리의 핵심 공급자다. 아무리 뛰어난 모델을 만들어도 HBM과 고성능 메모리 없이는 대규모 AI 서비스를 돌리기 어렵다.
데이터도 중요하다. 특히 피지컬 AI와 로봇 AI는 인터넷 텍스트 데이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조 현장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자동차 공장에서 어떤 공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선소에서 어떤 작업이 일어나는지, 제조 현장에서 어떤 물리적 변수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한국은 제조업이 강하다. 자동차와 조선과 반도체와 배터리와 디스플레이와 화학과 정유를 모두 갖춘 나라다. 딥마인드가 로봇과 제조 AI를 실제 산업에 적용하려면 한국의 현장 데이터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이 만남을 그냥 의전 행사로 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한국을 찾는 글로벌 CEO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포항과 호남 데이터센터 구상을 들고 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GPU 26만 장 우선 공급이라는 상징적 메시지를 남겼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ARM 스쿨을 광주 과기원에 만들기로 했다. 허사비스 CEO도 마찬가지다. 처음 제시된 선물은 구글의 오픈소스 모델 젬마를 한국어에 최적화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다소 약한 카드였다. 오픈소스 모델을 한국어로 잘 쓰게 만드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구글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한국이 내줄 것에 비해 충분한 대가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다.
결국 더 큰 카드가 나왔다. 구글 딥마인드는 한국에 약 600평 규모의 AI 글로벌 R&D 캠퍼스를 만들기로 했다. 영국을 제외하면 딥마인드가 해외에 실물 R&D 거점을 세우는 첫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처음에는 버추얼 연구센터 방식도 거론됐지만 한국 측은 실체 있는 공간과 연구 인력 파견을 요구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허사비스 CEO에게 본사 인력 두 자릿수는 와야 한다는 취지로 농담 섞인 요구를 했고 허사비스 측도 이에 호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을 만나려면 상징이 아니라 실질이 있어야 한다는 청와대의 태도가 반영된 장면이다.
이 R&D 캠퍼스의 핵심은 K 문샷 프로젝트의 공동 연구다. 문샷은 원래 구글이 사용해 온 개념이다. 당장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성공하면 인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프로젝트를 뜻한다. 기준은 분명하다. 수십억 명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고 기존 패러다임을 흔드는 혁신 기술이어야 하며 완전히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술적 단서가 있어야 한다. 성능을 10퍼센트 개선하는 일이 아니라 10배 이상의 임팩트를 노리는 연구다.
구글의 대표적 문샷 프로젝트는 웨이모였다. 2010년 자율주행차가 아직 대중적 상상이 되기 전 구글은 이미 자율주행을 문샷 프로젝트로 추진했다. 지금 웨이모는 일부 지역에서 실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실패한 프로젝트도 의미를 남겼다. 성층권 풍선을 띄워 인터넷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던 룬 프로젝트는 상업화에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기류 데이터와 통신 기술은 타라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타라는 광통신 방식으로 지상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초고속 통신을 제공하는 기술로 발전했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 다음 기술의 토대가 된 셈이다.
룬 프로젝트 / 출처. 구글
280어스 같은 다이렉트 에어 캡처 프로젝트도 문샷의 성격을 보여준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해 기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저온 폐열을 활용해 포집 비용을 낮추고 여기서 나온 물을 데이터센터 냉각수로 활용하는 방식까지 구상된다. 마카니 프로젝트는 하늘에 연처럼 비행체를 띄우고 거기에 터빈을 달아 풍력 발전을 하려는 시도였다. 상업화에는 실패했지만 공중 풍력과 자율 비행 제어 데이터는 후속 연구의 밑거름이 됐다. 문샷은 바로 이런 방식이다. 당장 돈이 안 된다고 버리는 연구가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다음 도약의 지식을 남기는 연구다.
한국의 K 문샷도 이런 방향을 노린다. 12대 국가 임무에는 SMR 선박과 핵융합 소형 실증로와 우주 데이터센터 원천 기술과 양자컴퓨터와 뇌 임플란트 기반 인지능력 강화 같은 과제들이 포함된다. 기업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단기 수익성이 불명확한 연구들이다. 하지만 성공하면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다. 한국은 조선이 강하기 때문에 SMR 선박 같은 분야에서는 독자적 강점을 만들 수 있다. 우주 데이터센터와 양자컴퓨터와 뇌 임플란트는 아직 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최소한의 기술적 단서와 국가적 투자가 결합하면 장기 전략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한국 혼자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딥마인드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딥마인드는 미국의 제네시스 미션에도 참여하고 있다. 제네시스 미션은 AI판 맨해튼 프로젝트로 불리는 미국의 국가 연구 프로그램이다. 원자력과 핵융합과 전력망 현대화와 양자정보와 차세대 반도체와 산업 혁신이 포함된다. 엔비디아와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과 AWS와 앤스로픽과 팔란티어와 AMD 같은 주요 빅테크가 참여한다. 미국조차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 차원의 대형 기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제조 2025를 통해 산업 고도화를 밀어붙였듯 미국도 AI와 에너지와 반도체를 국가 임무로 끌어올리고 있다.
딥마인드와 한국의 R&D 협력은 단순히 해외 연구소 하나가 생기는 일이 아니다. 한국 연구자와 기업과 국가출연연구기관이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자들과 같은 문제를 풀어보는 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거 한국 제조업이 일본과 미국 기업의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성장했듯 이제는 AI와 피지컬 로봇과 기후 기술과 바이오 영역에서 공동 연구를 통해 역량을 쌓아야 한다.
물론 중요한 쟁점도 있다. 공동 연구 결과물의 지식재산권은 누구의 것인가. 한국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활용해 딥마인드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면 그 가치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데이터는 그냥 내주는 자산이 아니다. 현대차와 엔비디아와 딥마인드의 협력에서도 지적재산권과 데이터 사용 조건을 놓고 오랜 협상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딥마인드의 K 문샷 협력도 마찬가지다. 약 6개월 동안 공동 연구 방식과 결과물 공유 구조와 데이터 사용 조건을 협의하기로 했다.
허사비스 CEO와 이재명 대통령의 대화에서 AGI도 중요한 주제로 등장했다. 허사비스 CEO는 늦어도 2030년까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범용 인공지능이 등장할 수 있다고 봤다. 이 전망이 맞다면 사회의 준비 시간은 길지 않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범위가 급격히 넓어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일자리 문제를 물었고 허사비스 CEO는 주택과 교육과 교통과 건강 같은 공공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는 구조를 언급했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필수 생활비를 낮추는 공공 서비스 강화를 강조했다.
이 대목은 로봇세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 로봇이 벌어들인 부를 세금으로 거둬 인간에게 나눠 주자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로봇세에는 딜레마가 있다. 로봇세는 규제이고 규제는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기술 발전이 늦어지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로봇세를 걷지 않으면 AI와 로봇을 가진 기업과 개인이 부를 독점하고 빈부 격차가 커질 수 있다. 허사비스 CEO가 공공 서비스 강화를 말한 것은 이 딜레마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AI를 활용해 주택과 교육과 교통과 의료의 비용을 낮추면 소득이 줄어도 실질 생활 여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딥마인드가 들고 온 600평 규모의 AI 글로벌 R&D 캠퍼스와 K 문샷 공동 연구는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에서 한국이 무엇을 얻어내느냐이다. 한국 연구자가 글로벌 AI 연구의 주변부가 아니라 공동 개발자로 들어가야 한다. 한국 제조 데이터가 단순 학습 재료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특허와 플랫폼으로 돌아와야 한다. 문샷은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한 연구에서 다음 기술의 씨앗이 나온다. 한국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그 씨앗을 남의 밭에만 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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