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인 협동조합이 세상을 바꾼다 - 호르무즈 봉쇄는 에너지전환의 기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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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에너지협동조합의 확산을 기대하며
[이원영 기자]
또다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대한민국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중동에 대한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이 질문이 돌아온다.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한다. 호르무즈라는 지정학적 위기가 에너지 위기로 직결되는 이 구조를 벗어날 길은 없을까.
문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태양광 패널 가격은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배터리 저장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고, 전기차와 전력망을 연결하는 V2G(차량-전력망 연계) 기술도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주요 대기업들이 세계 배터리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기술 역량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막고 있는가. 답은 단 하나다. 주민이 에너지를 직접 소유하고 수익을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다. 전력계통의 준비가 안 되어 있고 금융지원시스템이 불비되어 있는 것이다. 유럽 일본 중국에 비하면 낙후된 시스템이다. 지난 15년간 우리의 인구 1인당 재생에너지 공급수준은 일본의 약 1/2이요, 중국 유럽 미국의 약 1/3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동안 정치권의 책임은 별개로 하더라도, 세금으로 먹고사는 관료들은 어쩌자고 이토록 무책임한 세월을 보냈던가?
우리는 지금 에너지를 '소비'만 하도록 설계된 나라에 살고 있다. 매달 고지서를 받아 요금을 내고, 그 돈은 한전과 대형 발전사로 흘러간다. 지역에는 남는 것이 없다. 그 돈이 지역 내에서 순환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해법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증명되어 있다
독일의 에너지전환(Energiewende)을 이끈 것은 지멘스나 RWE 같은 대기업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에너지협동조합이었다. 독일 전역에는 약 900여 개의 에너지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며, 20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미국의 전기협동조합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전국 4200여 만 명에게 전력을 공급하고 수익을 배당한다. 공통점은 하나다. 주민이 에너지의 소비자가 아니라 소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델의 핵심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뜻이 맞는 이웃 10인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든다. 조합이 집합건물의 지붕, 주차장, 마을 유휴부지에 태양광을 설치한다. 초기 시설 비용은 미래의 발전 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이 선투자하고, 조합은 수익으로 상환한다. 상환이 끝나면 이후의 수익 전액이 조합원에게 배당된다. 거창한 자본이나 토지가 필요하지 않다. 지붕과 햇빛, 그리고 이웃이 있으면 된다.
이 '10인 협동조합' 모델은 이미 정부 정책의 핵심 표준이 되었다. 2026년 3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보고된 '햇빛소득마을 확산 추진계획'이 정확히 이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행정리 단위로 주민 10명 이상이 협동조합(또는 사회적협동조합)을 구성하면, 마을 내 유휴부지·옥상·농지 등에 300kW~1MW 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
햇빛연금이 들어오는 경로
정부는 올해 500곳 이상, 2030년까지 2500곳의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방향은 바로잡혔다. 게다가 이재명 대통령은 이 숫자를 늘리자는 검토도 지시하고 있다.
태양광 설치비의 최대 85%를 연 1.75% 저리 융자로 지원한다. 나머지 15%는 마을 출자금 등으로 마련하면 되는데, 지방소멸대응기금, 마을기업 보조금, 특별교부세 등을 추가 활용하면 실질적인 주민 부담을 10%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 발전 수익은 마을 복지와 주민 '햇빛연금'으로 환원된다.
대표 성공 사례로는 전남 신안군의 햇빛바람연금이 있다. 2018년부터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한 결과, 2025년 10월 기준 누적 수익 300억 원을 돌파했으며, 군민 약 49%가 매 분기 실질 소득을 받고 있다.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까지 나타나며 지역 소멸 대응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 신안군은 햇빛바람연금을 주민들에게 성공적으로 돌려주고 있다. 사진은 신안군청 전경.
ⓒ 신안군청
이 구조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잉여 전력을 자유롭게 팔 수 있어야 한다.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낮은 가격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인근 수요자에게 직접 거래할 수 있어야 협동조합 모델의 수익성이 성립한다.
둘째, 협동조합이 금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용이 부족한 소규모 주민 조합이 시중 금융에 접근하려면 공공의 보증과 정책 금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행정 절차가 단순해야 한다. 협동조합 설립, 인허가, 계통 연계, 금융 연결을 각기 다른 창구에서 몇 달씩 걸쳐 처리해야 한다면, 보통 시민이 이 길을 걸을 수 없다.
물론 그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가 도입한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는 발전사업자가 인근 주민에게 수익의 일부를 배분하도록 유도한 의미 있는 첫 시도였다. 같은 해 개설된 소규모 전력중개시장은 500kW 미만 소규모 발전자원을 시장에 참여시키는 제도적 통로를 열었다.
한국에너지공단은 에너지협동조합 설립 컨설팅과 초기 사업비 지원을 꾸준히 확대해 왔고, 일부 지자체는 공공건물 옥상 임대와 인허가 간소화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2023년 산업부가 발표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로드맵 역시 지역 맞춤형 전력 수급 체계로의 전환 의지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이번 분산에너지특별법은 이러한 흐름의 집대성이다.
그러나 법의 공백은 세 곳에서 두드러진다. 1)우선 직거래 허용 범위가 여전히 좁다. 한전의 망 이용료와 계통 연계 규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법이 직거래를 허용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수익이 조합원에게 돌아가기 어렵다. 2)다음으로 협동조합형 사업자에 대한 금융 지원 체계가 없다. 민간 은행이 신용 평가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소규모 조합은 여전히 대출 문턱에서 막힌다. 3)마지막으로 원스톱 행정 지원 체계가 빠져 있다. 법은 제도의 틀을 만들었지만, 주민이 실제로 조합을 만들고 설비를 가동하기까지 안내해 줄 공공 지원 인프라는 설계되지 않았다.
지방정부의 거버넌스가 기대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법률 위에 올라탈 거버넌스다. 중앙정부는 에너지협동조합 전용 보증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이 기업 보증에 특화되어 있다면, 공동체형 에너지 사업에 특화된 보증 트랙이 별도로 필요하다. 정책 금융기관은 '에너지전환 협동조합 펀드'를 조성해 장기 저리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
나아가 협동조합 발전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권 수익의 지역 환류 구조도 협의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의 수익이 수도권 대기업이 아닌, 전국 방방곡곡의 마을 조합원에게 돌아갈 때 비로소 에너지전환은 '국민의 것'이 된다. 에너지 안보는 해협 밖에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 함께, 우리 지붕 위에서 만드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법률의 뼈대를 세웠다면, 그 위에 살을 붙이는 것은 지역의 몫이다. 보증 창구를 열고, 공공 부지를 내어주고, 10인이 모이면 6개월 안에 조합을 가동시킬 행정 지원 체계를 실제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 구체적인 거버넌스의 빈자리는 올 6월 새로 출범할 지방정부가 메꿔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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