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60엔 방어선' 붕괴… 금리는 못 올리는데 시장금리는 29년 만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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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프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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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 "정권 신중론에 BOJ 발 묶여"… 투기 자금까지 올라타며 엔저 가속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런 발언은 하면 안 된다." 13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 직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을 따로 불러 세웠다. 전날 NHK 방송에서 아카자와 경제산업상이 엔저 대응 수단의 하나로 "금리 인상도 선택지"라고 언급한 데 대한 질책이었다. 표면적으로는 "통화정책은 일본은행 소관"이라는 원칙 때문이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정권이 금리 인상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 같은 기류가 관저 내부에서도 분명하게 감지됐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2주 남짓 지난 29일 뉴욕 외환시장.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0엔 중반까지 밀리며 이른바 '160엔 방어선'이 무너졌다. 이어 30일 도쿄 시장에서도 160엔대 초반에서 반등하지 못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개입 경계선으로 여겨지던 구간이 사실상 저항 없이 붕괴된 것이다. 같은 시각 채권 시장에서도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장기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물 국채 금리는 30일 장중 2.52%까지 상승하며 1997년 이후 약 29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0.75%로 묶어둔 상황에서 시장금리만 급등하는, 정책과 시장의 괴리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출발점은 BOJ의 '멈춤'이었다. BOJ는 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했다. 회의에서는 금리 인상 필요성을 주장하는 위원이 3명으로 늘고 물가 전망도 상향 조정됐지만 실제 인상에는 나서지 않았다. 정권의 신중론이 작용한 가운데 중동 정세 불안이 겹치며 BOJ가 서둘러 움직이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정권의 견제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닛케이에 따르면 신중파로 분류되는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상은 "원칙적으로 매번 출석"하며 BOJ 회의를 직접 살피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상 당시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의 사전 시사 발언이 시장에 선반영되자, 정권 내에서 "운신을 좁혔다"는 불만이 쌓인 점도 BOJ가 몸을 사린 배경으로 꼽힌다. 그 사이 외부 환경은 빠르게 움직였다. 중동 긴장이 지속되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우려가 커졌고, 원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수준에서 고착됐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에는 곧바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졌다. 채권시장에서는 물가 상승을 반영한 국채 매도가 확산되며 금리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미국 변수까지 겹쳤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했지만,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3명이 성명문의 완화적 기조 문구 유지에 반대하며 긴축 지속 신호를 보냈다. 미 장기금리가 오르며 일본에도 상승 압력이 번졌고, 미국이 쉽게 완화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달러 강세를 뒷받침했다. 환율 시장에서는 이러한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다. SMBC신탁은행의 니노미야 게이코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 기대와 미·일 금리 격차 확대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단기적으로 161엔대까지 추가 하락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닛세이기초연구소의 우에노 츠요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현재 변동성만으로는 개입 명분이 부족하다"며 "162엔 수준까지 빠르게 움직여야 당국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투기 자금도 가세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집계에 따르면 21일 기준 투기세력의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약 9만 4460계약(약 1조 1800억엔 규모)으로, 약 1년 9개월 만에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일본 정부·BOJ가 시장 개입에 나섰던 2024년 7월 이후 가장 큰 규모다. SMBC닛코증권의 마루야마 린토 전략가는 "펀더멘털 측면에서 엔저 압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보고 헤지펀드 등이 엔화 매도 포지션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권시장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경고도 나온다. 파인브리지인베스트먼츠의 마쓰카와 타다시 운용부장은 "금리 인상에 찬성하는 위원이 늘고 물가 전망까지 상향됐음에도 실제 정책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중앙은행이 물가 흐름보다 뒤늦게 대응하는 '비하인드 더 커브' 우려를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된다. 국제통화연구소의 구고 쇼타로 연구원도 "현 시점에서는 7월 금리 인상이 유력하지만,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6월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금융시장의 흐름은 한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고유가가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해 채권 매도를 부추기고, 동시에 무역수지 악화 전망을 통해 엔저를 심화시키는 구도다. 닛케이는 정책 대응이 늦어질수록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닛케이는 1차 석유위기 당시 BOJ가 경기 부양에 매달리다 인플레이션 억제에 뒤처진 반면, 2차 석유위기에서는 선제적 긴축으로 충격을 줄였던 사례를 비교하며 대응 시점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인상이 늦어지면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가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진다는 경고다. 당국의 대응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투기적 움직임에 대해 단호하고 강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지만, 시장에서는 개입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다. 후쿠오카파이낸셜그룹의 사사키 도오루 수석 전략가는 "최근 엔저는 투기적 요인만이 아니라 펀더멘털에 따른 흐름이어서 개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라증권의 고토 유지로 전략가도 "개입이 이뤄지더라도 효과는 수주에서 길어야 다음 BOJ 회의(6월)까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엔저가 추가로 진행될 경우 수입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트럼프 미 행정부의 통상 압박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일본 당국에는 부담이다. '160엔 붕괴'와 '금리 2.5% 돌파'라는 두 장면은 지금 일본 금융시장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책이 머뭇거리는 사이 시장과 자금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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