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힌트’도 없이 수백조 회사채 폭탄 어쩌나 [트럼프 스톡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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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249>스페이스X, 빚 갚으러 30조 원 회사채 발행시총 600조 증발...10년물 수익률 또 4.5%하이퍼스케일러에 엔비디아도 대규모 부채채권 물량 넘치는데 워시는 점도표 폐지 시사월가, 불확실성 확대에 시장 금리 상승 우려
고(故)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그린스펀 전 의장은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투병하다가 22일(현지 시간) 향년 100세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19년 동안 연준 의장을 맡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닷컴버블(인터넷 산업 거품)’이 정점을 향하던 1999년 5월 ‘포워드 가이던스(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사전 예고 지침)’를 처음 도입했다. 다만 이를 정례화한 것은 후임인 벤 버냉키 전 의장이다. 케빈 워시 현 의장은 지난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에서 포워드 가이던스 폐지를 공식화했다. AP연합뉴스
중동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채권 금리가 우상향하는 가운데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포워드 가이던스(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사전 예고 지침)까지 폐지하자 시장 불안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을 목적으로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까지 천문학적인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채권 값이 점점 바닥을 향하는 분위기다. 지난 12일(현지 시간) 상장한 스페이스X조차 기존 빚을 갚겠다며 30조 원이 넘는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예고했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사전 안내 없이 금리 인상 가능성만 열어둔 상태에서 막대한 회사채가 시장에 쏟아지자 당분간 채권 금리가 상승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스페이스X, 상장 열흘 만에 30조원 회사채 발행 결정...美국채 10년물, 심리적 마지노선 4.5% 재돌파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 AFP연합뉴스
22일(현지 시간) 채권 시장에서 글로벌 추종 지표(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중동 협상 진전에도 전 거래일보다 0.05%포인트 상승한 4.51%에 거래돼 심리적 상한선인 4.5%를 또다시 돌파했다. 지난 10일 이후 7거래일 만이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미중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지난달 15일 4.5%를 넘은 이래 한 달 넘게 그 근방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4.23%까지 뛰며 지난해 2월 이후 최고치에 도달했다. 주택담보대출과 우량 회사채 금리의 준거가 되는 30년물 금리도 4.94%로 심리적 저항선인 5.0%에 재차 근접했다.
이날 채권 금리를 직접적으로 밀어올린 것은 지난 12일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우주항공 기업 스페이스X가 30조 원이 넘는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이날 투자자들과 전화 회의를 진행하고 첫 회사채를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에 스페이스X 주가도 이날 하루 만에 16.43%나 급락했다. 시가총액이 하루 4000억 달러(약 600조 원)나 증발하며 뉴욕 증시 역대 두 번째 기록을 썼다. 역대 최대는 지난해 1월 27일 중국의 생성형 AI인 ‘딥시크’ 열풍으로 주가가 16.97% 하락하고 시총이 5890억 달러 줄어든 엔비디아의 기록이다. 상장 이후 3거래일 연속 올랐던 스페이스X는 이후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공모가(135달러)보다는 높지만, 16일 기록한 장중 최고가(225.64달러)보다는 31.5% 낮은 154.60달러로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회사채는 5~30년 만기로 최소 200억 달러(약 30조 원) 규모로 발행할 예정이다. 스페이스X는 회사채 발행을 통해 부채를 상환하고, 남는 금액은 일반 기업 목적 명목으로 사용한다. 앞서 무디스, 피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10일 적자 기업인 스페이스X에 대해 ‘투자적격’ 등급을 부여한 바 있다.
스페이스X는 X(옛 트위터)와 xAI의 부채를 갚을 목적으로 올 3월 브리지론(단기 임시 대출)을 사용했다. 6개월 내에 갚아야 할 브리지론 규모만 200억 달러에 달한다. xAI는 매년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도 지난해에만 대형 데이터센터 구축 등 설비투자에 127억 달러(약 19조 원)를 썼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오펜하이머는 스페이스X가 2031년까지 4000억 달러의 순부채를 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오라클 부채 규모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애초 스페이스X는 이달 10일 IPO로 총 750억 달러(약 116조 원)를 조달할 계획이었다. 이후 IPO 공동주관사들이 추가 물량 배정 옵션(그린슈)을 행사하면서 자금 조달액은 총 857억 달러(약 130조 원)로 늘어났다. 여기에 채권시장에도 뛰어들면서 시중 자금을 대거 흡입하게 됐다.
최근 엄청난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거대 기술기업(빅테크)은 스페이스X뿐이 아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모회사 알파벳,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오라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도 이미 올해 전 세계적으로 1590억 달러(약 240조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2024년(170억 달러)과 지난해(1080억 달러) 연간 발행액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자체 현금과 지분 투자 자금만으로는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AI의 장밋빛 미래에 기대서 빚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 6곳만 올해 이미 240조원어치 발행...엔비디아도 30조원어치 팔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엔비디아 주최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 참석하면서 취재진과 질답을 나누고 있다. 서울경제DB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올초 제시한 올해 연간 자본지출(CAPEX) 계획은 아마존 2000억 달러, 구글 1750억∼185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 1400억 달러, 메타 1150억~1350억 달러, 오라클 500억 달러 등 총 7000억 달러가 넘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들이 향후 3년간 연간 14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아마존은 이달 9일 캐나다에서 140억 캐나다달러(약 15조 4000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했다. 이는 캐나다 회사채 시장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아마존의 이번 채권은 3~30년 5개 만기 구조로 발행됐다. 3년 만기 채권의 가산금리는 캐나다 국채 대비 0.40%포인트, 30년 만기 채권은 1.10%포인트로 책정됐다.
아마존은 3월에도 8개 만기 구조로 구성된 145억 유로(약 25조 5000억 원) 규모의 유로화 채권을 발행해 해당 지역 회사채 시장 최대 기록을 새로 쓴 바 있다. 지난해 초 이후 지금까지 발행한 채권 규모만 700억 달러(약 105조 원)가 넘는다. 아마존은 나아가 이달 8일 씨티은행, BoA, JP모건, HSBC, 웰스파고에서 총 175억 달러(약 26조 6000억 원) 규모의 대출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돈을 잘 버는 회사임에도 지출 비용이 이보다 압도하다 보니 부채시장의 돈을 끌어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아마존뿐 아니라 메타도 지난해 10월 사상 최대 규모인 최대 300억 달러(약 45조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신청했다. 이후 메타는 올 4월 250억 달러 상당의 채권을 발행했다. 알파벳 또한 2월 200억 달러 상당의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지난달 캐나다에서도 85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팔았다. 이는 아마존 이전까지 캐나다 채권시장 최대 규모 발행 기록이었다. 알파벳은 지난달 처음으로 엔화 표시 채권까지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밖에 2월에는 오라클이 250억 달러,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인 애보트가 20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3월에는 세일즈포스가 250억 달러를 채권시장에서 조달했다.
하이퍼스케일러뿐 아니라 글로벌 최대 시총 기업인 엔비디아도 이달 15일 250억 달러 상당의 채권을 발행했다. 애초 200억 달러어치만 발행하려다가 수요가 폭증하자 이를 250억 달러로 늘렸다. 채권 발행에는 850억 달러나 주문이 몰렸다. 채권 만기는 2∼30년이고, 최장기물 금리는 국채 대비 0.9%포인트에서 0.65%포인트로 낮췄다. 엔비디아가 채권을 발행한 것은 2021년 이후 5년 만이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50억 달러 상당의 인텔 지분을 인수했고, 앤스로픽과 오픈AI에도 각각 100억 달러, 300억 달러를 투자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자금 조달 경쟁은 회사채뿐 아닌 전환사채(CB) 시장으로도 번졌다.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바클레이즈는 올 들어 지난달 29일까지 미국 기업의 CB 발행 규모를 570억 달러(약 87조 원)로 집계했다. 이는 해당 기간 기준 사상 최고 수준이다.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 변동성이 커진 영향이다. 바클레이즈의 베누 크리슈나 미국주식 전략책임자는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올해 전환사채 발행이 지난해 기록한 1200억 달러(약 183조 원)를 크게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워시는 포워드 가이던스와 점도표 폐지 시사...월가, 불확실성 확대에 시장금리 선제 상승 우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17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시장 자금이 한정된 상태에서 회사채가 과도하게 시장에 공급될 경우 투자자들을 모으기 위해 기업들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기업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비해 발행 금액이 너무 클 경우 신용 위험이 발생하기에 채권 보상 금리(스프레드)가 자연스럽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민간 채권 물량이 늘어날 경우 당연히 국채의 투자 가치는 떨어지게 돼 시장 전반의 금리가 오르게 된다.
시중 금리가 들썩이는 데에는 워시 의장이 포워드 가이던스를 전격적으로 폐지한 영향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워시 의장이 포워드 가이던스와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점으로 표시해 분기마다 발표하는 표)를 폐지하겠다고 나서자 주요 투자자들이 금리 상승과 시장 변동성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연준은 16~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낸 통화정책 성명서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3.50∼3.75%에서 동결한다면서도 포워드 가이던스 내용은 제외했다. 또 연준이 올해 말 기준금리 예측치 중간값을 3.8%로 제시하며 연내 한 차례 금리를 올릴 수 있음을 시사한 가운데, 워시 의장은 19명 위원 중 유일하게 예상 금리를 제출하지 않았다. 워시 의장은 지난 4월 21일 미국 연방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 때부터 미래를 예고하는 점도표와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워시 의장은 FOMC 직후 연 첫 기자회견에서 “정책 성명서가 다소 간결해졌고 일부 오래된 표현은 생략됐다”며 “현재의 정책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포워드 가이던스도 포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점도표를 ‘지우개 달린 연필’에 비유하며 “나는 경제전망요약(SEP)에 대한 오랜 견해에 따라 전망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닷컴버블(인터넷 산업 거품)’이 정점을 향하던 1999년 5월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시절 처음 도입한 이래 간헐적으로만 사용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 벤 버냉키 전 의장 때부터 성명서에 고정적으로 삽입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한 시장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버냉키 전 의장은 그해 정례 기자회견을 도입하고 2012년 1월부터는 점도표까지 공개했다. 2006년 2월 최연소 이사로 연준에 발을 담갔던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과 포워드 가이던스가 정례화되기 직전인 2011년 3월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FT 보도에 따르면 JP모건의 밥 미셸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의 방침은 투명성 저하를 부를 것이고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투명성이 낮아지면 추측과 불확실성이 커지고 프리미엄(보상 금리)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BNP파리바의 캘빈 체 전략·경제부문 책임자는 “금리 인상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과 변동성 증가를 모두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준의 정책 변화와 회사채 발행량 급증으로 당분간 채권시장의 금리도 상승 압박을 받을 공산이 커졌다. 나아가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 진행 경과와 물가 부담에 따른 영향도 지속적으로 시장에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전에 이미 시장 자체 금리가 들썩일 수 있다는 뜻이다.
※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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