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젖줄로 바뀐 대출펀드, 유럽도 돈 뺀다는데 [트럼프 스톡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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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234>스위스 사모펀드, 13조원 사모대출 인출 제한데이터센터 자금줄 노릇...위험 신호 유럽 확산“실적 꺾이면 위기”...유로존 연기금 6% 손실클리프워터 환매 요청 비중 14→17%로 증가4년 뒤 AI 부채 900조...침체 땐 시스템 충격
스위스의 중견 대체자산 운용사인 파트너스그룹의 데이비드 레이튼 최고경영자(CEO). 파트너스그룹은 올 2분기 86억 달러(약 13조 원) 규모의 자사 ‘파트너스그룹 글로벌 밸류 SICAV’ 사모펀드 자산의 약 10%에 대해 환매 요청이 들어오자 이를 5%로 제한했다. 사진 제공=파트너스그룹 홈페이지
인공지능(AI)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소프트웨어(SW) 등 극심한 타격을 입는 업종에 투자한 사모대출 펀드들이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이제는 사모대출 부실 문제가 미국을 넘어 유럽 등 다른 나라까지 전이되는 분위기다. 아직 금융 시스템 전반을 흔들 사안은 아니라는 의견이 더 많지만, 기존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역설적으로 다시 AI 투자 사모대출 상품에 몰리면서 이를 더 주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게 나온다. 개인투자자들까지 기업 평가가 불분명한 투자 시장에 대거 진입하는 탓에 자칫 일부 AI 관련 사모대출 펀드 실적이 삐끗할 경우 그 여파가 금융시장에 상당히 크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기반시설) 구축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기에 기관투자가는 물론 고액 자산가, 일반 개인의 돈까지 모두 끌어와야 할 상황이다. 소프트웨어 등 일부 사모대출 펀드에 대한 환매 요청 규모보다 AI 투자 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하기에 해당 시장이 올해 이후에도 계속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스위스 운용사, 13조원 규모 펀드 인출 제한...사모대출 위기 신호, 유럽까지 확산
3일(현지 시간) 미국 맨해튼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한 거래중개인이 증시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은 스위스의 중견 대체자산 운용사인 파트너스그룹이 86억 달러(약 13조 원) 규모의 자사 ‘파트너스그룹 글로벌 밸류 SICAV’ 사모펀드 환매를 제한했다고 보도했다. 이 펀드는 만기가 없이 투자자들이 수시로 가입·환매할 수 있는 이른바 개방형 ‘에버그린’ 사모펀드다. 기관뿐 아니라 고액 자산가, 일반 개인 자금을 대거 유치했다. 파트너스그룹은 올 2분기 들어 해당 펀드에 대한 환매 요청 규모가 벌써 순자산가치(NAV)의 10%에 육박하자 규정상 분기별 인출 한도인 5%를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파트너스그룹의 주가는 이 소식에 이날 스위스 증시에서 16.33%나 폭락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파트너스그룹의 주가는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투자자 가운데 80%는 기관이지만, 환매는 대부분 개인이 요구했다.
데이비드 레이튼 파트너스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TV에서 “사모대출에서 시작된 환매 압력 가운데 일부가 다른 자산군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위즈덤트리의 아니카 굽타 연구책임자는 “사모대출 시장에서 개인 고객들은 약한 고리”라며 “사모펀드는 본질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데 개인들은 보통 기관보다 자금을 더 빨리 인출한다”고 지적했다. 사모펀드는 통상 기업 지분이나 만기가 몇 년 이상인 대출 채권 등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에 주로 투자하는데, 자금 유치를 위해 개인들에게 분기마다 환매 길을 열어줘 어려움에 빠졌다는 분석이었다.
스위스 파트너스그룹의 사모대출 펀드 환매 제한은 그간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나타났던 위기 신호가 유럽까지 본격적으로 번졌다는 데에서 의미를 지녔다. 실제 이날 뉴욕 증시에서는 파트너스그룹의 소식으로 블랙스톤(-4.03%), 블루아울캐피털(-2.32%), 아레스매니지먼트(-4.04%),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3.43%), KKR(-4.15%), TPG(-4.15%) 등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주가가 줄줄이 하락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달 26일 보고서를 내고 사모대출에 기댄 현 AI 열풍이 유로존 전역에 금융위기를 불러올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AI 기업과 데이터센터 사업 자금 원천으로서 사모대출의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으나, AI 실적에 대한 기대가 꺾이는 등 악재가 발생하면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볼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ECB는 “현재 유로존에서 사모대출 자체가 금융 안정을 위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자료 부족 탓에 전체적인 위험을 평가하기도 어렵고 시장의 불투명성 등은 여전히 우려 사안으로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장 심리가 갑자기 악화될 경우 금융 불안도 더 광범위하게 번질 수 있다”며 “상당한 규모의 자산 가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CB “AI 자금 대지만 실적 꺾이면 금융위기”...클리프워터 환매 요청액 17%로 급증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월가 표지판. 로이터연합뉴스
사모대출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에 따라 대형 시중은행들이 대출 장벽을 높이면서 그 대안으로 급성장한 시장이다. 사모펀드들은 이 과정에서 운용자금 규모를 키우기 위해 부실 기업에도 무리하게 대출을 내주고, 상환 요건도 크게 완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에는 개인 자금까지 무분별하게 유치했다.
그 결과 지난해 9~10월 자동차 부품 대기업 퍼스트브랜즈와 비우량 자동차담보대출 업체 트라이컬러·프리마렌드가 잇따라 파산 신청을 하면서 과잉 신용 누적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당시 큰 손실을 입었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올 들어서는 1월 12일 앤스로픽이 ‘클로드 코워크’를 출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간 사모대출의 주요 투자 대상이 됐던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AI 모델에 줄줄이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며 개인들이 잇따라 환매를 요청하고 나섰다. 블랙스톤과 아레스매니지먼트 등 지난해 4분기와 올 1분기 고객들의 환매 요구를 모두 들어주던 사모펀드 운용사들도 현금 여력이 부족하자 점차 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블루아울캐피털은 2월 19일 ‘블루아울 캐피털코프Ⅱ(OBDC Ⅱ)’의 환매를 영구 중단하겠다고 결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ECB는 모의실험을 실행한 결과 사모대출 위기가 발생하면 그 여파가 고위험 담보 대출(레버리지 론), 고위험·고금리 채권(하이일드 채권), 주식시장으로 대거 확산해 유로존 보험사와 연기금이 특히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사모대출 위기 상황에서 유로존 연기금은 전체 자산의 5∼6%에 달하는 손실을 보고, 보험사와 시중은행들도 자산의 4%, 1.3%를 각각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미국에서도 사모대출의 이상 신호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인 클리프워터는 이달 2일 투자자 서한에서 주력 사모대출 펀드인 ‘클리프워터 기업대출펀드’의 2분기 환매 요청 규모가 펀드 전체 지분의 17%로 집계됐다고 알렸다. 이는 지난 1분기 기록한 14%보다 더 높은 수치였다. 이 펀드는 자산 규모만 310억 달러(약 47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상품이다. 분기별 환매 한도가 기본적으로 5%이지만, 이사회의 재량에 따라 최대 7%까지 상향할 수 있다. 클리프워터는 1분기 환매 규모는 요청액의 절반인 7%로 설정했지만, 2분기에는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5%만 수용했다. 이 운용사 역시 그간 개인들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영업을 한 것이 최대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달 27~2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최고 권위의 투자 행사 ‘번스타인 전략 의사결정 회의’에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짐 젤터 사장도 “사모대출 상환 요청이 올해 내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30년 AI 대출 잔액 900조원...단기 경기침체 땐 금융 시스템 전반이 충격받을 수도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월가에서는 각종 위기 신호에도 막대한 AI 투자 자금을 감당하려면 사모대출을 반드시 이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부 실패가 두렵다고 AI 시대 개막을 주저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올 1월 7일 2000억 달러(약 305조 원) 수준인 AI 기업 관련 사모대출 잔액이 2030년 6000억 달러(약 916조 원)까지 폭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지난달 2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와 블랙스톤은 앤스로픽이 사용할 AI 칩 확보를 위해서만 360억 달러(약 55조 원) 규모의 빚을 조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와 블랙스톤은 부채 조달 거래에 참여할 추가 투자자를 모집한 뒤 자금 전액을 구글 AI 칩인 텐서처리장치(TPU)를 매입하는 데 쓰기로 했다. 구매한 TPU를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해 앤스로픽에 대여하는 개념의 투자로, 이 역시 전형적인 사모대출이다.
이는 AI 반도체 조달을 위한 역대 최대 거래이기도 하다. 해당 거래에서 구글의 TPU 개발 협력사인 브로드컴이 조달 자금의 상당 부분에 대해 지급보증까지 서기로 했다. 반도체 담보 사모대출은 최근 코어위브 등 주요 AI 인프라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자산의 강제 매각 위험성을 낮춘다는 측면에서 사모대출 펀드들의 인출 제한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 위험이 확산되는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데 전문가들도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2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뉴욕경제클럽 강연에서 현 금융시장 투자 환경에 대해 “우리는 분명히 공포보다 탐욕이 더 많은 상황에 놓여 있다”며 “시장 분위기가 공포로 매우 빠르게 돌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솔로몬 CEO는 그러면서도 “세계가 낙관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한 금융 시스템 내에 유동성은 충분하다”며 스페이스X, 오픈AI, 앤스로픽 등 기술기업들의 초대형 기업공개(IPO)를 시장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물론, 사모대출 부실 문제가 글로벌 금융 체계 전반을 위협할 수준으로 심각해졌다는 징후는 아직 없는 상태다. 다만, 최근 각종 지정학적 악재 속에서도 미국과 글로벌 경제를 홀로 견인하는 AI 인프라 투자가 사모대출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은 눈여겨볼 만하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수익은 없이 미래에 대한 기대로만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단기적으로 금리 인상이나 경기 침체 충격이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흔들릴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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