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흥망성쇠 시리즈] ➆ 빚 돌려막기로 쌓아 올린 대우의 '세계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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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프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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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돌려막기’와 외환위기 직격탄 41조 원 분식회계, 장부 속에 숨겨 사법 사상 최대 규모의 책임과 추징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제공 | 서울=한스경제 최형철 산업국장겸 대기자ㆍ이기민 ESG행복경제연구소 부소장 | 한국 기업사에서 대우그룹만큼 '반면교사'로 굵은 족적을 남긴 기업은 단언컨대 없다. 대우그룹은 한마디로 자기자본과 기술 없이 '빚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성'이었다. 외부 신용이 단 한 번이라도 막히는 순간 그룹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구조였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대우는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의 눈과 귀를 가렸다. 역설적으로 국내 기업들은 '대우 공중분해'라는 단군이래 최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선진 회계구조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대우는 1967년 32세의 청년 김우중이 단돈 500만 원(현재가치 2억 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했다. 대우실업으로 간판을 내건 김우중은 섬유와 봉제 수출로 존재감을 알렸다. 대우는 1970년대 국가 주도의 중화학공업 정책을 발판 삼아 전자, 자동차, 조선, 건설, 증권 등 사업 영역을 급속히 확장했다. 대우의 성장 속도는 실로 경이적이었다. 1974년 1억 달러였던 수출액은 1995년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1998년에는 176억 달러를 수출해, 국내 총 수출(685억 달러)의 25.7%를 점유하며 삼성물산(24.1%)과 현대상사(23.9%)를 누르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김우중 회장이 주도한 이른바 '세계 경영'의 깃발 아래 대우는 4개 대륙에서 500여 개의 현지법인을 거느린 글로벌 그룹으로 우뚝 섰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중국,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수단 등 신흥 시장에 무역, 제조, 통신, 건설 거점을 마련하며 개발도상국 기업의 글로벌화 교과서로 불리기도 했다. 대우의 해외시장 개척은 전적으로 김우중의 개인기에 의존했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던 김우중은 상대 국가 최고 권력자와 담판을 통해 거래를 텄다. 한 번 물꼬를 트면 대우 전 계열사를 동원해 진출하는 식이었다. 대우의 1998년 7월 기준 해외 사업장은 500여 곳, 고용인력은 15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대우의 성장은 투자 자금 대부분을 은행 대출, 기업어음(CP), 회사채 등 외부 차입에 의존하는 '부채 돌려막기' 방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룹 전체가 '성장→부채 조달→재투자→추가 성장'의 고리에 묶여 있었다. 자전거 페달을 계속 돌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구조였다.  자전거 페달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구조 결정적인 타격은 1997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였다. 달러 부채의 원화 환산 가치가 폭등한 반면, 해외 현지법인들은 현지 통화 가치 하락으로 자산 가치가 급감했다. 실제 대우자동차의 경우 1998년 4조 729억 원이었던 자본총계가 1년 만에 4,809억 원으로 급락했다. 1999년 대우자동차의 부채비율은 3,675%까지 치솟았다. 그 해 8월 대우그룹은 워크아웃을 신청해야 했다. 당시 대우는 현대에 이어 국내 2위 기업집단이었다.  김우중의 '화려한 개인기'로 시장은 대우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우중은 무려 41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로 대한민국을 속였다. 대우는 부실 경영을 감추기 위해 영국 런던에 위치한 비밀 금융조직 BFC(British Finance Center) 등을 통해 비정상적인 외환 거래와 자금 송금을 반복하며 장부를 조작했다. 검찰 수사 결과 분식회계 규모는 약 41조 원에 달했다. 1997~98년의 분식 행위를 각각 독립적인 범죄로 간주해 합산한 수치다. (주)대우가 약 27조 원(65.9%)을 차지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 대우중공업은 1997년 2조 8,023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자기자본이 완전 잠식된 상태였다. 그러나 가공자산 약 2.9조 원을 부풀려 기재함으로써 947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것으로 장부를 꾸몄다. 이어 1997~98년 두 해에 걸쳐 약 5조 원에 달하는 가공자산을 과대계상해 흑자 회사로 둔갑시켰다. 이 기간 동안 채권 금융기관, 투자자, 감독 당국 모두 리스크를 제때 인식하지 못했다.대우그룹 붕괴는 10여 년에 걸친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김우중은 항소심에서 징역 8년 6개월과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선고 받았다. 그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전직 임원 7인에 대해서는 23조 원의 공동연대 추징금이 최종 확정됐다. 단군이래 최대 경제범죄였다.법원은 부실 외부감사를 수행한 안진회계법인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었다. 대법원은 "재무제표가 적정하게 작성되었다면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인정하며 회계법인의 손해배상 책임을 확정했다.이 과정에서 대우의 부실을 처리하기 위해 수십조 원의 공적 자금, 혈세가 투입됐다. 채권단 은행들은 출자전환과 채무재조정을 통해 막대한 부채를 떠안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제일은행과 한빛은행의 매각 및 통합 등 한국 금융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불러오는 계기가 됐다. 흩어진 계열사들의 각자도생과 부활 대우그룹은 해체됐으나, 계열사들은 새 주인을 만나 오늘날 한국 경제의 핵심 축으로 살아남았다. 대우자동차는 미국 GM에 인수, GM한국사업장이 됐다. 대우전자는 위니아전자로 이어졌다. 대우중공업의 조선 부문은 대우조선해양을 거쳐, 2022년 한화그룹 품에 안겨 한화오션으로 재탄생했다. 기계 부문은 두산을 거쳐, 현재 HD현대인프라코어에 편입됐다. (주)대우의 무역 부문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되었고, 건설 부문은 대우건설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며 중흥건설 산하에서 경쟁력을 이어가고 있다. 대우증권은 2016년 미래에셋증권과 합병하여 국내 최대 규모의 증권사로 거듭났다.특히 한화오션이나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사례는 부채 더미 속에서도 핵심 역량만큼은 보존되어 독립 후 세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게 된 역설적인 유산으로 평가받는다.대우그룹의 흥망성쇠는 한국 경제에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동시에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대우 사태를 겪으며 한국은 연결 재무제표 의무화, 외부 감사인의 독립성 제도화, 기업집단 공시 규정 강화 등 강력한 회계 및 공시 혁신을 이뤄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내부 고발자 보호나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강화 제도 역시 대우가 남긴 뼈아픈 교훈의 결과물이다.'반면교사' 대우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은 재무 건전성, 투명한 지배구조, 그리고 리스크 관리에 달려 있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500만 원의 신화는 불과 한 세대 만에 뜬구름처럼 사라졌다. '관행이라는 이름의 분식회계는 법적 면책이 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문 속 한 문장을 남기고 대우는 그렇게 스러졌다.   Copyright © 한스경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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