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태의 글로벌 경제 읽기] 평온한 바다 아래의 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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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태 Sh수협은행 부행장보
양기태 Sh수협은행 부행장보
최근 미국 금융시장은 흥미로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시장의 불안 심리를 보여주는 대표 지표인 VIX 지수의 최근 1주일 평균은 약 17 수준으로, 장기 평균인 20 내외를 밑돌고 있다. 반면 SKEW 지수는 약 143 수준으로, 장기 평균인 115~125를 크게 웃돌고 있다. 시장은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장기 평균과 비교하면 투자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위험을 향하고 있다.
두 지표는 모두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심리를 반영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라보는 위험은 다르다. VIX가 향후 시장의 단기 변동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면, SKEW는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충격이 매우 큰 극단적 위험, 즉 꼬리위험(Tail Risk)에 대한 경계심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VIX가 수면 위의 파도를 측정한다면, SKEW는 수면 아래 흐르는 보이지 않는 해류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다. 최근 시장은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바다 아래에서는 여전히 경계심이 흐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현재 세계경제는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 지정학적 갈등,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AI)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 등 다양한 구조적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당장의 충격은 보이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 역시 크지 않다. 시장은 평온하지만, 투자자들은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다.
역사를 돌아보면 자본주의는 성장과 혁신의 역사인 동시에, 편중의 역사이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는 타인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욕망이다. 더 높은 수익에 대한 기대와 성공을 향한 열망은 자본을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로 이동시킨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자금은 특정 영역으로 집중된다. 이러한 집중은 생산성과 혁신을 촉진하며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편중이 과도하고 빠르게 진행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편중이 불투명성과 결합할 때 위험은 커진다. 시장 참여자들이 위험의 실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면, 자산가격은 상승하고 낙관론은 강화된다. 그리고 낙관론은 다시 더 많은 자금을 불러들이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문제는 시장을 지탱하던 전제가 흔들릴 때 발생한다. 주택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높은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 국가는 결코 부도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 시장의 균형도 함께 무너지기 시작한다. 역사 속 위기들은 대부분 이러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 시작되었다.
1920년대 미국에서는 주식시장이 영원히 상승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확산됐다.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부동산 가격은 결코 하락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존재했다. 2000년 전후에는 인터넷이 기존 산업 질서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을 지배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복잡한 구조화 금융상품이 위험을 분산시켜 금융시스템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믿음들은 현실의 검증을 받았다. 위기는 단순히 자산가격이 하락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시장을 지탱하던 전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도한 편중과 불투명성은 충격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1990년 일본 부동산 시장,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당시 가장 빠르게 팽창했고, 가장 많은 자금이 집중됐으며, 동시에 위험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던 영역이었다.
결국 위기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는 대개 자본이 가장 많이 몰렸던 곳, 그리고 위험의 실체가 가장 불투명했던 곳에서 발생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비슷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관련 투자 열풍은 어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민간신용(Private Credit) 시장은 어떤가. 주요국의 재정적자는 어떤가. 이들이 미래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가장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 영역이며, 동시에 충분한 투명성이 확보되어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현재의 VIX와 SKEW는 시장이 단기적 안정과 구조적 불확실성을 동시에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비교적 평온하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위험을 의식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라, 역사가 남긴 기억일 수 있다.
『주역(周易)』 곤괘(坤卦)에는 이상견빙지(履霜 堅氷至)라는 말이 전한다. 서리를 밟으면 두꺼운 얼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거대한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작은 징후가 누적되고, 보이지 않는 균열이 확산되며, 시장을 지탱하던 믿음이 흔들릴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눈앞의 변동성보다 자본이 어디로 빠르게 몰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영역이 얼마나 투명한지 여부일 것이다. 최근 VIX는 평온을 말하고 있지만, SKEW는 경계를 말하고 있다. 평온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아래 흐르는 해류를 읽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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