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도 국익이다. ‘한국형 ODA’의 승부수”…이창섭 GSIC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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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원조 축소 속 한국형 ODA 전략 필요단순 공급망 지원 넘어글로벌 표준 공략 시험대국익과 책임 함께 가는 K-ODA 균형론 중요
지에스아이컨설팅 이창섭 대표. [사진제공 = 지에스아이컨설팅]
“스리랑카에서 일할 때는 매일 ‘치나’ 소리를 들었어요. 중국인이냐고. 한국에서 왔다고 설명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했죠. 우간다에서는 ‘무중구’였어요. 외국인이라는 뜻인데, 어딜 가나 그 소리가 따라다녔어요.”
이창섭 지에스아이컨설팅(GSIC) 대표가 개발도상국 현장을 처음 누빈 건 2000년대 중반이다. KOICA 봉사단원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월드비전 몽골, 우간다를 거치며 10여 년을 현장에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시 개도국 출장길에 오른다. 달라진 건 명함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요즘은 한국 하면 다 안다. K드라마를 보고 한국 기업 제품을 쓰고, KOICA가 지은 학교를 기억한다”며 “20년 전이랑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가 체감하는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더 이상 ‘떠오르는 공여국(emerging donor)’이 아니다.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전환한 유일한 OECD DAC 회원국. 한때는 스스로 떠벌려야(talk to talk) 인정받았다면,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work to talk)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국제개발 업계 안에서 나온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글로벌 ODA(공적개발원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USAID를 사실상 해체했다. OECD에 따르면 2025년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 공여국 4개국이 2년 연속 ODA를 줄이는 첫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America First’ 기조가 국제 공급망뿐 아니라 원조 질서까지 흔들어놓은 것이다. 자국민의 ODA 지지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왜 개발도상국을 도와야 하는지, 그 명분을 설득하는 일이 어느 나라에서나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현 정부는 “국익 연계 실용 ODA”를 내세우며 예산을 조정했다. 협의의 국익(경제적 실익, 수출, 공급망)을 ODA와 결부시키는 방향이다.
이 대표는 이 흐름을 무조건 비판하지 않는다.
그는 “‘국민한테 ‘왜 우리 세금을 개도국에 쓰느냐’는 질문에 답을 못 하면 ODA는 지속이 안 된다”며 “협의의 국익 논리는 그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동시에 맥락을 짚는다. 예전에는 ‘국제사회 기여’, ‘선진국으로서의 책임’ 같은 광의의 국익 논리가 ODA의 명분으로 충분히 작동했다. 미국이 원조 질서를 주도하고 국제 규범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던 시대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그 논리가 지금은 더 이상 잘 안 먹힌다”며 “글로벌 ODA가 흔들리면서 그 명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협의의 국익으로 완전히 선회하는 것도 그는 경계한다. 여기서 그가 꺼내는 건 한국의 역사적 위치다.
이 대표는 “다른 나라들은 ODA를 자국 이익과 연결 짓는 데 훨씬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그 나라들 나름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는 식민지를 경영해본 나라들에게 개도국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ODA는 그 도구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정서가 없는 한국은 다르다. 그는 “우리나라는 ODA를 왜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나라”라며 “그게 어떻게 보면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지만 오히려 우리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 강점을 가장 현실적으로 활용해야 할 무대로 그가 꼽는 건 국제 표준화 경쟁이다. AI든, 디지털 인프라든, 지금은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는 나라가 시장을 가져간다. 그 표준을 누가 채택하느냐는 결국 개발도상국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개도국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가 쌓여 있어야 우리 기술과 방식을 선택한다. 그게 ODA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균형 잡힌 국익 ODA’의 실체가 여기 있다. 단기적 경제 실익을 노골적으로 쫓는 것도 아니고, 추상적인 인류애를 내세우는 것도 아닌, 신뢰를 장기적으로 쌓아 실질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는 방식.
이 대표가 특히 주목하는 건 한국만의 자리다.
그는 KOICA 문화 ODA 전략 수립에 참여했을 때 든 생각이 있다고 했다.
제국주의를 행사한 적 없는 나라가 ODA의 당위성을 스스로 고민하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드물고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EDCF가 지원한 캄보디아 댐 평가를 하면서 우리나라가 지원한 인프라가 지역사회 관광자원으로 전환된 사례를 목격했다”며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의 성과관리 고도화 연구에 참여하면서 재단 스스로가 사업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모습을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관들은 생각보다 이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밖에 잘 안 알려졌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가 런던정경대(LSE)에서 국제사회정책·개발학 석사를 마친 것도 그 고민의 연장선이었다.
그는 “현장을 다니다 보니 개발 사업들을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외교부 산하 한·아프리카재단 연구부서장, INGO 전략기획 등을 거쳐 2025년 GSIC를 설립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ODA 양을 늘리는 속도가 잠시 줄어드는 시기”라며 “그게 오히려 기회라고 본다. 한국만이 할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잘 할 것인가를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섭 대표는 지에스아이컨설팅(GSIC) 설립자로, KOICA·EDCF·KOFIH 등 국내 주요 ODA 시행기관의 사업 평가 및 전략 수립 용역을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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