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속도전… 남겨진 지역경제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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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본격화되면서 지역경제와 노동, 산업 전환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탈석탄 정책의 핵심은 발전소 폐쇄 속도보다 폐쇄 이후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주민과 노동자들을 전환 과정에 참여시킬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36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28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정치권에서는 석탄발전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발전소가 밀집한 충남·경남·인천 지역에서는 "발전소 문을 닫은 뒤 지역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탄소중립이라는 국가 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경제 위축과 일자리 감소 부담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특별법안이 13건 정도 발의됐지만 지원 방식과 주민 참여, 대체산업 육성 방향 등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 특별법 쏟아지는데… "지역 전환 전략은 안 보인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더 이상 선언적인 목표가 아니라 실제 진행 중인 변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석탄발전소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모색' 토론회에서 "많은 분들이 탈석탄은 미래에 생길 일을 준비하기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시작됐고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발전 현장에서는 변화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태양광 발전 비중이 늘어나면서 과거 24시간 일정하게 가동되던 석탄발전이 낮 시간대에는 출력이 급격히 줄고 저녁 시간대 다시 발전량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정책위원은 현장 분위기를 설명하며 "발전소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청기백기 놀이도 아니고 왜 계속 켰다 껐다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석탄발전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안 발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전환의 구체적인 방향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특별법 상당수는 기금 설치와 재정 지원 근거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정작 지역 산업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주민과 노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논의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목소리가 충분히 담기지 않은 채 중앙정부 주도로 지원법이 추진될 경우 단순한 '생색내기 법안'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이 앞으로 어떤 공동체와 산업 구조로 전환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다면 특별법 역시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석탄발전소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모색' 토론회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지역경제 충격과 노동 문제, 산업 전환 방향 등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 사진=김소은 기자
문제는 석탄발전소 발전량 감소 영향이 지역경제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발전량이 줄어들면 지방자치단체 세수가 감소하고 발전소 정비업체와 연료 운송업체, 주변 식당과 숙박업소 등 지역 상권에도 타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석탄발전 폐지지역 특별법 관련 검토보고서(2025년 2월·박희석)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전국 취업유발 감소 인원을 약 2만5,000명 수준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탈석탄 논의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이헌석 정책위원은 "복사 붙여넣기식 계획이 너무 많다"며 "지역마다 조건이 다른데도 수소와 AI 같은 비슷한 계획만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없이 재정만 마련될 경우 또 다른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충청남도가 2021년 전국 최초로 조성한 '정의로운 전환기금' 사례도 언급됐다. '정의로운 전환'은 탈석탄과 탄소중립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일방적인 피해를 떠안지 않도록 산업 전환과 일자리 대책 등을 함께 추진하자는 개념이다.
충청남도는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른 지역경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100억원 규모 기금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후 어떤 사업을 지원해야 하는지를 두고 혼선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LED 간판 교체나 버스 표지판 정비, 관광 프로그램 같은 사업들이 포함되면서 "지역 산업 전환 전략보다는 일반 지역 지원 사업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 발전소는 멈추면… 지역은 어디로 가야 하나
전문가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과거 폐광지역 지원 정책의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1980~1990년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을 통해 강원랜드 중심 지역 지원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산업 전환과 지역 자립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해 5월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 참여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의로운 탈석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뉴시스
고이지선 녹색전환연구소 팀장은 "당시에도 지역 회복을 위한 다양한 고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강원랜드 중심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지금도 강원도 상당 부분이 폐특법 지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로자 대책 역시 위로금과 일회성 지원 중심이었다"며 "탈석탄 정책 역시 단순 보상 중심으로 흐르면 장기적인 지역 회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핵심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보다 '누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인가'라고 말한다. 특히 지역 주민과 노동자, 소상공인이 참여하는 장기적인 사회적 논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고 팀장은 "탈석탄 시점은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준비할 시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며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지역사회 목소리를 듣는 거버넌스 구조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에서는 공통적으로 사회적 합의 구조가 핵심 요소로 꼽힌다. 독일은 탈석탄위원회를 구성해 노동계와 산업계, 지역사회, 환경단체가 함께 폐쇄 일정과 지역 전환 방안을 논의했고, 이후 탈석탄법과 지역 구조강화법 등을 별도로 마련해 노동 대책과 지역경제 회복 정책을 병행했다.
스코틀랜드는 GDP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삶의 질과 공동체 회복을 핵심 지표로 삼았다. 고 팀장은 "스코틀랜드는 공동 설계와 공동 실행, 비용과 혜택의 공정한 분배를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스페인은 지역별 실태 조사와 사회적 협약 구조를 적극 활용한 사례로 언급됐다. 미국은 취약지역을 우선 식별해 지원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스페인은 중앙정부와 노조, 발전사업자가 함께 참여하는 지역 전환 협약 체계를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탈석탄의 핵심은 발전소 폐쇄 자체보다 폐쇄 이후 지역이 어떤 산업과 공동체로 다시 살아남을 것인지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탄소중립이라는 국가 과제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그 부담을 특정 지역만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공재생에너지연대, 기후위기비상행동, 민주노총 등 단체 대표자들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6.13 노동자·시민 대행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현장에서는 정부 정책과 지역 현실 사이 간극이 크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임현선 영흥주민협의회 사무국장은 인천 영흥도의 회처리장 활용 사례를 언급하며 "정부는 태양광과 해상풍력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기술적·경제적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해상풍력 전기를 어떻게 저장하고 활용할 것인지, 수소로 전환할 것인지 등에 대한 세부 계획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며 "중앙정부가 이야기하는 정책과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 사이 차이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노동계에서는 고용 불안 문제도 핵심 쟁점으로 제기됐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 지부장은 "최근 석탄발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도망가자'는 의미의 '탈출'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며 "발전량 감소로 협력업체 일감이 줄면서 노동자 임금과 인력 축소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안에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표현조차 빠져 있고 고용 승계나 고용 유지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정진영 경남환경운동연합 탈석탄사무국장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문제는 단순히 발전소 하나를 멈추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산업 구조 전체를 바꾸는 구조적 전환 문제"라며 "단순 지원금이나 토건 사업 중심 접근으로는 지역 회복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탈석탄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탈석탄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피하기 어려운 흐름이 됐다. 하지만 발전소 폐쇄 이후 지역경제와 노동, 산업 전환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지역소멸과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결국 탈석탄 정책의 성패는 발전소를 얼마나 빨리 멈추느냐보다 폐쇄 이후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주민과 노동자들을 전환 과정에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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