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ESG 경영’이 약해지고 있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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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프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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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론 속 더 강해진 ‘자본의 기준’… ESG, ‘선택’ 아닌 ‘거래 조건’으로 글로벌 통상·금융 환경 변화 속 ESG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 필요 공시를 넘어 의사결정으로… ESG 2.0 시대의 구조적 의미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최근 ESG를 둘러싼 피로감과 후퇴론이 일부에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규제 완화 기조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EU 역시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해 일부 공시·보고 부담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표면만 보면 ESG의 흐름이 주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자본시장과 통상의 실제 흐름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글로벌 ESG 투자규모는 2018년 30.7조 달러에서 2024년 33.6조 달러, 2025년에는 39조 달러로 꾸준히 확대되며 이미 주류 투자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ESG는 더 이상 선택적 테마가 아니라 자본배분의 실질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EU의 행보는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시 영역에서는 현실적인 조정을 시도하는 한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사실상의 탄소 관세를 부과하고,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을 통해 공급망 전반의 인권·환경 책임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통상질서 자체의 재편이다.
결과적으로 ESG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비용 증가를 넘어 시장 접근 자체가 막히는 구조에 직면한다. 과거에는 공시 여부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공시의 수준이 곧 경쟁력이다. ESG는 기업 평판의 문제를 넘어 수출, 투자, 자본비용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공시기준의 전환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중심으로 글로벌 기준이 표준화되면서, ESG 정보는 비재무적 서술의 영역을 벗어나 재무적 판단자료로 전환되고 있다. 공시는 이제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재무적 연결'을 요구한다. ESG 리스크가 현금흐름과 자본비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조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정부는 2028년부터 단계적 ESG 공시 의무화를 담은 로드맵 초안을 발표했고,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공시 기준을 통해 재무와 비재무 정보의 연결 구조를 제도화하고 있다. ESG는 더 이상 개별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산업 전반을 관통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K-GX(녹색전환) 전략과 생산적 금융 정책은 자본의 흐름을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ESG 기준을 핵심 변수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친환경 정책이 아니라 산업구조 전환과 자본배분 전략의 문제다. ESG는 개별 기업의 선택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설계하는 도구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더 넓은 시야에서 보면, ESG는 기업 차원의 의제를 넘어선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파리기후협정이 규정하는 글로벌 규범은 기후변화, 불평등, 공급망 인권 문제를 시스템 리스크로 정의한다. ESG는 이러한 리스크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제 공통의 언어이자 기준이다.
결국 ESG를 둘러싼 '후퇴론'은 표면적 현상에 가깝다. 일부 규제는 조정될 수 있지만, 자본과 시장의 기준은 오히려 더 정교해지고 있다. ESG는 '좋은 일을 하는 활동'에서 '자본이 판단하는 기준'으로 이동했다. 설명의 시대는 끝났고, 판단의 시대가 시작됐다.
기업의 과제도 분명하다. ESG를 별도의 조직이나 보고서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투자 의사결정과 자본배분 구조 안에 내재화해야 한다. 탄소는 비용으로, 인권은 공급망 리스크로, 지배구조는 할인율로 반영된다. ESG는 더 이상 추가적인 비용이 아니라 현금흐름과 자본비용을 바꾸는 변수다.
동시에 ESG는 분명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 중심의 비재무적 접근에 머물렀던 ESG 1.0을 넘어, 재무와 연결된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시하는 ESG 2.0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ESG가 '돈의 문제'로 편입되는 순간이다. 이는 ESG의 당위성을 약화시키는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시장 내에서 그 기능과 영향력을 한층 강화하는 전환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본질적 변화가 있다. 기업 경영의 게임 규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규칙 아래 축적된 경쟁력은 새로운 기준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다. 시장이 요구하는 평가기준이 달라지는 순간, 기업의 전략과 자원 배분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ESG는 이제 기업의 행동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시기준의 정교화와 재무화는 ESG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더 이상 선택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외부 요구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시장 역시 빠르게 재편되며, 자본의 흐름 또한 새로운 규범과 기준에 맞춰 이동하고 있다. 결국 ESG는 보여주기식 활동을 넘어, 재무적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핵심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ESG의 중요성은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본질과 역할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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