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부터 李 정부까지… 배드뱅크를 왜 '개인 빚' 터는 데 활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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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연속기획 넘버링 배드뱅크 잔혹사 1편부실채권 정리 위한 배드뱅크한국선 개인 채무자 구제 제도사법형 채무조정 문턱 높은 탓
배드뱅크(Bad Bank).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은행을 뜻한다. 다양한 국가들이 금융기관의 건전성 제고를 위해 배드뱅크를 활용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선 개인 채무자의 신용회복을 돕는 목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 문제는 효과도 별로인데, 정부가 출범만 하면 배드뱅크 공약을 반복적으로 내놓는다는 점이다. 이래도 괜찮을까. 연속기획 넘버링 '배드뱅크 잔혹사' 1편이다.
금융기관의 대출 부실은 따지지 않은 채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 문제 삼는 건 곤란하다.[사진|뉴시스]
국가가 개인의 채무를 조정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상황에 맞게 채무를 조정하면 부실채권에서 기인하는 위험을 낮출 수 있어서다. 채무자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도와 경제적으로도 선순환도 꾀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국가들이 채무조정 장치를 두고 있는 배경이다.
방식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개인회생이나 파산ㆍ면책과 같은 '사법형 채무조정'이다. 간단히 말해, 법원이 채권자와 채무자의 권리관계를 조정해 주는 거다. 채권자에게는 추심 비용과 시간을 줄여줌으로써 합법적이고 예측 가능한 채권 회수 기회를 제공한다. 채무자에겐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미국의 Chapter 7(파산)과 Chapter 13(회생), 영국의 도산법상 개인파산, 일본의 민사재생법상 개인회생절차 등이 사법형 채무조정에 해당한다.
둘째는 '협약형 채무조정'이다. 신용회복위원회(이하 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이 대표적이다. 법원의 강제력 없이 채권자와 채무자가 신복위라는 중재자를 통해 분할상환ㆍ이자감면 등을 협의하는 방식이다.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사법형 채무조정에 비해 효율적이며, 시장 친화적이다. 다만, 채권자가 채무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셋째는 '공공기금형 채무조정'이다.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기금을 조성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직접 매입한 후 소각하거나 일정 비율로 (채무자의) 원금 등을 감면해주는 방식이다. 국제적으로는 '배드뱅크(Bad Bank)'라고도 한다.
스웨덴이 1992년 설립한 세쿠룸(Securum)과 레트리바(Retriva), 미국이 2008년 운영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아일랜드가 2009년 설립한 국립자산관리기구(NAMA)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특징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제고'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기금을 조성하기 때문에 앞서 두 방식과 달리 정부 재정을 투입한다. 그래서 개인 채무가 아닌 금융기관의 부실을 해소할 필요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참고: 개인 채무를 조정할 땐 통상 사법형 채무조정이나 협약형 채무조정으로 해결한다.]
[사진|뉴시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에선 배드뱅크를 '개인 채무자의 부실채권 처리'에 활용한다는 거다. 이명박 정부 '신용회복기금', 박근혜 정부 '국민행복기금', 문재인 정부 '장기소액연체자지원재단', 윤석열 정부 '새출발기금', 이재명 정부 '새도약기금'은 모두 개인 채무자의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배드뱅크다.
[※참고: 한국의 공공기금형 채무조정은 노무현 정부에서 먼저 시작됐다. 2000년대 초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급증하자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한마음금융(2004년)과 희망모아(2005년)를 설립해 부실채권을 직접 매입해 처리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독특한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뭘까. 우선 한국의 개인파산ㆍ회생 제도는 여러 차례 개선했는데도 진입장벽이 여전히 높고 낙인 효과도 크다. 그래서 법원을 통한 사법형 채무조정이 흡수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배드뱅크가 메우는 측면이 있다.
정치적 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채무 조정은 국가 재정을 거의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가시적인 수혜자를 많이 창출해 선거 공약으로 쓰임새가 높다. 그러다 보니 상시적ㆍ제도적 해법인 사법형ㆍ협약형 채무조정 제도보다 '신용 대사면'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선거철마다 반복된다.
문제는 역대 정부의 배드뱅크 실효성을 분석해본 결과 우리나라의 배드뱅크가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역대 정부의 배드뱅크 성과부터 짚어보자.
■ 사례① 이명박 정부 신용회복기금(2008~2012년) = 먼저 이명박 정부의 신용회복기금부터 보자. 이명박 대통령(이하 당시 직함)은 2007년 대선 당시 '720만명 신용 대사면'이라는 공약을 내놨다. 저신용자ㆍ채무불이행자의 연체 기록을 말소하고, 채무를 감면해주겠다는 거였다. 당시 저신용자(7~10등급)가 720만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2008년 7월 발표한 '금융소외자 지원 종합대책'의 지원 규모는 72만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원금 탕감 없는 이자 감면'이어서 실질적인 채무 감면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신용회복기금은 총 11차례에 걸쳐 104만1000명의 연체채권을 매입했는데, 실제 채무조정 약정을 체결한 사람은 23만명뿐이었다. 정책 목표(72만명)에도 못 미쳤다.
■ 사례② 박근혜 정부 국민행복기금(2013~2016년) =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 역시 '채무불이행자 322만명 구제'라는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해 탄생했다. 하지만 실제 출범한 기금의 지원 목표는 최대 34만명으로, 공약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2016년 2월까지 3년간 국민행복기금은 56만명의 채무자를 지원해 정책 목표는 넘겼지만, 공약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운영 구조도 이상했다. 기금은 시장에서 장부가격의 5% 미만에 거래되는 부실채권을 장부가격의 8~10%에 사서 채무자에게는 원금의 50%를 상환받았다. 겉으로는 '원금 50% 감면'이라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매입 원가 대비 다섯배 이상 이익이 남는 구조였다. 심지어 정부는 이 이익금을 금융회사와 배분했다. 사실상 정부가 채권추심을 대신한 셈이다.
■ 사례③ 문재인 정부 장기소액연체자 지원(2017~2022년) =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은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무 해소'라는 공약의 일환이었다. 방식은 두가지로 진행됐는데, 하나는 회수 가능성이 없는(소멸시효 완성 등) 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는 거였다. 이전의 '매입 후 조정'과는 달랐다. 캠코가 자체 보유한 40만3000명의 채권을 일괄 심사한 후,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29만1000명의 채권 추심을 중단하고 소각했다. 캠코 보유채권이어서 직접적인 재정 투입은 없었다.
다른 하나는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2018년 설립)'을 통한 일반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처리였다. 정책 목표는 76만2000명이었지만, 실제 확정된 지원 대상은 9462명에 그쳤다. 채권 소각에 쓰인 돈도 10억8600만원(출연금 1061억원)의 1%에 불과했다. '원금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상환능력 심사 통과'라는 요건을 충족한 이들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반면 2018~2024년 캠코에 지급한 위탁관리비는 81억3300만원으로 소각액의 7.5배였다. 소액연체자 채무조정보다 재단 운영에 더 많은 돈을 썼단 얘기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정부의 배드뱅크는 어땠을까. 이 이야기는 넘버링 '배드뱅크 잔혹사' 2편에서 이어나가보자.
김진욱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email protected]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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