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계약 체결시 선금-위약금 '빡빡'..롤러코스터 실적 '이젠 없다' [여의도 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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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프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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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기둥인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거대한 구조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사이클’이었습니다. 수요에 따라 실적이 급등락하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모습이 메모리 업계의 숙명처럼 여겨졌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국내 반도체 양사는 이제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미리 주문을 받고 물량을 공급하는 이른바 ‘수주형 비즈니스’로의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이 변화의 핵심은 ‘장기공급계약’, 즉 LTA(Long Term Agreement)의 진화에 있습니다. 과거에도 장기계약은 존재했지만, 대부분 강제성이 없는 신사협정에 불과했습니다. 업황이 나빠지면 고객사가 구매를 취소해도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체결되는 계약들은 차원이 다릅니다. 고객사가 미리 돈을 지불하는 ‘선급금’은 물론, 약속한 물량을 반드시 사야 하는 ‘최소 구매 의무’, 그리고 이를 어길 시 배상하는 ‘재무 보증’까지 포함됩니다.
실제로 글로벌 5위 낸드 기업인 샌디스크는 단 5건의 계약으로 약 62조 원의 매출을 확정 짓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이처럼 구속력있는 계약을 통해 업황이 꺾이더라도 수익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방패를 마련했습니다.
반도체 기업들이 이처럼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바로 AI가 있습니다. 과거 메모리 수요는 스마트폰이나 PC같은 소비재 중심이었습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소비자가 지갑을 닫고, 곧바로 반도체 수요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는 공정이 까다롭고 생산량을 갑자기 늘리기 어렵습니다. 물량 확보다 곧 경쟁력이 된 시대가 오면서, 갑이었던 고객사들이 오히려 더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장기 물량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메모리 산업의 고질병이었던 실적 널뛰기를 완화할 전망입니다. 가격이 하락하는 구간이 오더라도, 이미 확정된 수주잔고와 최소 매출 보장 장치가 이익 감소 폭을 방어하는 완충장치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삼성전자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이러한 계약 구조가 “과거와 달리 상당한 구속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SK하이닉스 또한 지난 1분기 영업이익 37조 원이라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새로운 성장 모델인 NBM(New Business Model)으로의 성공적인 안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메모리 반도체는 이제 가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산업에서, 안정적인 수주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수주 기반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가시성을 높이고, 나아가 기업 가치를 재평가받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나윤 머니투데이방송 MTN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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