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력업계, '친환경 전환' 경쟁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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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ESG] ESG Now
HD현대일렉트릭이 독자 개발한 SF₆-Free 고압차단기를 고객사 검사관이 살펴보고 있다.(사진=HD현대일렉트릭 제공)
전력 수요로 슈퍼 호황에 올라탄 전력기기 업계는 요즘 새로운 고민을 안고 있다. 바로 전력기기의 ‘친환경 전환’이다. 전력기기의 핵심 절연 물질로 사용된 육불화황(SF6) 가스가 지구온난화를 불러온다는 이유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해 업계의 퇴출 대상으로 지목되면서다.
지멘스에너지, 히타치에너지, 제너럴일렉트릭(GE) 버노바 등 글로벌 전력기기 선두 기업들은 ‘온실가스 저감’ 제품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시장 선점에 나섰다. HD현대일렉트릭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도 유럽 등 친환경 전력기기 시장 공략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딜레마 빠진 신재생 전환
육불화황은 전기 절연성이 뛰어나고 화재 위험이 적어 가스절연개폐장치(GIS)와 고압차단기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문제는 육불화황이 이산화탄소보다 2만3500배나 강한 지구온난화지수를 가진 온실가스라는 점이다. 한 번 방출되면 대기 중에 1000년 이상 머물며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업계에서는 전력기기 내 육불화황의 존재를 신재생에너지 전환의 딜레마로 보고 있다. 기존 화석연료 발전에서 태양광·풍력 발전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대규모 전력 설비를 확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전환을 위해 전력망을 깔수록 오히려 온실가스 누출 위험이 커지는 모순에 직면한 것이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 먼저 칼을 빼 들었다. EU는 강력한 불소계 온실가스 규제를 통해 고전압 전력기기 내 육불화황 사용을 금지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전압 등급에 따라 2032년까지 단계적으로 육불화황이 포함된 신규 전기 개폐장치의 시장 출시가 엄격히 제한된다.
효성중공업의 420kV 초고압차단기. (사진=효성중공업 제공)
불붙은 글로벌 ‘친환경 선점 경쟁’
글로벌 전력기기 기업들은 서로 다른 온실가스 저감 기술을 내세워 친환경 시장 선점에 나섰다. 질소와 산소 중심의 절연 매질을 활용하는 드라이 에어 방식부터 플루오로니트릴(C4-FN) 계열 혼합가스, G3 가스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독일 지멘스에너지의 ‘블루 GIS’ 포트폴리오는 드라이 에어 기술이 적용된 대표 사례다. 질소와 산소 등 공기 중 성분을 활용한 건조 공기를 절연 물질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온실가스 배출 부담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 수주로도 이어졌다. 지멘스에너지는 2024년 독일 철강기업 엘베 슈탈베르케 페랄피(Elbe-Stahlwerke Feralpi)의 친환경 그린스틸 생산을 위한 압연공장 변전소에 123킬로볼트(kV)급 블루 가스절연개폐장치(GIS)를 공급했다.
일본 미쓰비시일렉트릭도 자체 개발한 84kV 드라이 에어 GIS를 2024년 일본 2위 전력회사인 간사이전력에 공급했다. 글로벌 배전 강자인 ABB 역시 드라이 에어를 절연 매질로 사용하는 ‘세이프 링 에어’ 플랫폼을 출시해 배전 솔루션 분야 친환경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 최대 에너지 기업인 이온(E.ON)과의 공급 계약을 따냈다.
반면 히타치에너지는 C4-FN 계열 혼합가스를 통해 초고압 시장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회사가 2021년 출시한 친환경 포트폴리오 ‘이코닉(EconiQ)’을 통해서다. C4-FN과 이산화탄소, 산소 등을 혼합해 육불화황보다 낮은 지구온난화지수를 가지면서도 고전압 절연 성능을 확보했다. 최대 550kV급의 고압차단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적용된 420kV 데드탱크차단기(DTB)는 북미 시장에서만 65대 넘게 계약됐다.
미국 GE 버노바는 G3 가스 방식의 강자다. 3M이 개발한 ‘Novec 4710’ 계열 가스와 이산화탄소, 산소 등을 혼합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육불화황에 비해 지구온난화지수가 99% 이상 낮다. 420kV급 고압 제품군까지 적용을 마쳤다. 스웨덴과 덴마크 등 유럽 지역에서 상용화됐다.
HD현대일렉트릭의 독자 개발한 SF6-Free 고압차단기(가스절연개폐장치) (사진 제공=HD현대일렉트릭)
국내 전력 ‘빅4’도 친환경 경쟁 참전
국내 전력기기 4사(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일진전기)도 친환경 전력기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2033년이면 친환경 차단기 시장이 74억 달러(약 11조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이 드라이 에어 및 C4-FN 혼합가스를 앞세우는 가운데 LS일렉트릭은 G3 가스 기반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145kV 육불화황 대체 고압차단기의 최종 승인 시험을 마쳤다고 5월 초 발표했다. 해당 제품은 스웨덴 전력회사가 운영하는 변전소에 공급된다. 대표적인 불소계 온실가스인 육불화황을 전혀 쓰지 않는 친환경 차단기로 꼽힌다. 고압차단기는 변전소 인근에 설치돼 누전 등 안전사고를 막는 전력기기다.
공급이 이뤄지면 HD현대일렉트릭이 유럽에 친환경 전력기기를 납품하는 세 번째 사례가 된다. 앞서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10월 핀란드의 설계·조달·시공(EPC) 전문 기업과 145kV GIS 14대 공급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스웨덴 전력 기업으로부터 공급 계약을 따냈다.
초고압부터 중저압에 이르는 모든 포트폴리오를 2028년까지 확보해 친환경 수요에 대응한다는 것이 HD현대일렉트릭의 구상이다. 72.5㎸와 145㎸, 170㎸ 차단기에 이미 관련 기술을 적용했다. 용량을 키운 420㎸급 제품도 상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연말까지 충북 청주에 신규 배전기기 전용 공장을 완공하고, 연간 중저압 차단기 생산을 지금의 2배 수준인 약 1300만 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양재철 HD현대일렉트릭 전력부문장은 5월 열린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위크(KIW) 2026’에서 “북미 지역 전력기기 슈퍼사이클 이후 미래 먹거리로 가장 주목받는 곳이 유럽 시장”이라며 “변화하는 환경 규제를 맞추기 위해 친환경 고압차단기 제품을 지속해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단기 분야 전통 강자인 효성중공업은 지난 4월 국내 최초로 드라이 에어를 적용한 145kV를 개발하고 양산에 뛰어들었다. 질소와 산소로 구성된 드라이 에어를 적용해 온실가스를 저감했다. 여기에 진공차단기 기술을 더해 절연 성능과 전류 차단 성능을 확보했으며, 차단기의 안정적인 작동을 가능케 했다는 설명이다. 145kV 차단기에 이 두 기술을 적용한 것은 국내에서 효성중공업이 처음이다.
앞서 효성중공업은 C4-FN 혼합가스를 적용한 친환경 GIS 개발 로드맵도 발표했다. 현재 72.kV와 170kV급에 적용한 이 기술을 245kV 이상 특고압 모델에도 사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경남 창원에 1000억 원을 투자해 전용 공장을 신설하고, 인도 푸네 현지 공장에도 생산라인 증설을 추진한다.
지난해 네덜란드 아른험 지역에 설립한 유럽 연구개발(R&D) 센터를 통해서도 현지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효성중공업의 첫 글로벌 연구 거점인 이곳에서 친환경 GIS와 고압차단기 개발에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육불화황 대체 차단기 제품군을 고전압 영역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며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와 전력 인프라 전환 수요에 맞춰 차세대 전력기기 시장 공략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S일렉트릭은 G3 가스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2016년부터 GE와 기술협력을 통해 이 기술을 적용한 친환경 GIS 개발을 추진해 왔다. 170kV GIS에서 사용한 G3 가스를 회수해 재사용하는 기술도 2023년 개발을 마쳤다. 기체 분리막 기술을 활용해 가스에서 Novec 4710 계열 가스를 다시 분리해 정제하는 방식이다.
2020년부터 170kV 친환경 GIS 개발에 성공한 LS일렉트릭은 이를 통해 국내 첫 수주 기록도 확보한 바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2022년 발주한 첫 번째 친환경 입찰에서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충북 음성 천연가스 스위치 야드에 170kV급 친환경 GIS 10여 기를 공급하는 계약으로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
일진전기는 2018년부터 지멘스와 손잡고 친환경 전력 기자재 개발에 착수했다. 2023년에는 드라이 에어 및 진공 차단 기술 등이 적용된 친환경 72.5kV GIS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현재 72.5kV, 170kV 제품에 이 기술을 적용하고 해외 수주를 노리고 있다.
안시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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