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바다' 부산의 실험, 76만원이 바꾼 노년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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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프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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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노인일자리⑥] 부산금정구시니어클럽의 노인역량활용사업 '우리동네ESG센터' [유창재 기자] ▲  우리동네ESG센터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 장난감과 페트병 등이 자원순환을 거쳐 다양한 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 유창재 부산은 오래전부터 '노인과 바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고령화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뜻이다. 부산광역시의 고령인구 비중은 24.5%. 전국 지자체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다. 2022년에는 특·광역시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고령자 1인 가구 비율도 37.8%에 달한다. 지난 7일 오후 찾은 부산 금정구 <우리동네 ESG센터 1호점>은 이런 도시의 현실 속에서 꽤 낯선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노인들은 단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과 자원순환을 실천하는 주체로 살아가고 있었다. 폐플라스틱을 분류하고 세척하는 손길, 고장 난 장난감을 다시 살려내는 작업대, 아이들에게 탄소중립 교육을 하는 강사들, 그리고 센터를 찾는 주민들을 맞이하는 인포데스크까지. 이곳은 단순한 노인일자리 사업장이 아니었다. '환경'과 '삶의 존엄'이 동시에 움직이는 현장이었다. 채종현 부산금정구시니어클럽 관장은 "우리동네ESG센터는 노후 공실을 활용해 탄소중립과 노인일자리 인식 개선, 지속가능한 친환경 노인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만든 자원순환 거점센터"라고 설명했다. ▲  부산 금정구에 있는 우리동네EGS센터 1호점을 지난 7일 오후 방문했다. ⓒ 유창재 우리동네 ESG센터는 2022년 12월 28일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부산에만 8호점까지 개소했으며, 16개 구·군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천에도 1, 2호점이 문을 열었다. 1호점의 규모는 약 360㎡(110평). 올해 참여 인원은 60명이다. PET순환팀, 장난감순환팀, 장난감수리팀, 안전손잡이설치팀, 인포메이션팀, 도서관리팀 등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이들은 주 3회, 하루 5시간씩 일한다. 월 최대 임금은 76만1040원(주휴수당 포함). 누군가에겐 크지 않은 돈일 수 있지만, 이곳 어르신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급여 이상의 의미였다. 센터의 성과도 적지 않다. 폐플라스틱 수거를 통해 3만629㎏의 탄소 감축 효과를 냈고, 세대이음 환경교육을 통해 76명의 교육지도자를 양성했다. 아동·청소년 7277명이 환경교육을 받았다. 숫자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곳에서 만난 세 명의 참여자들이 들려준 이야기였다. [최수철 참여자] "여기서 다시 친구를 만났습니다" ▲  우리동네ESG센터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최수철 어르신. ⓒ 보건복지부 환경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최수철(67세)씨는 35년 동안 중학교 교사로 일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환경교육을 한다. 강사팀만 별도로 20명인데, 대부분 초중고교 교사·교수 출신이다. 그는 "퇴직 후 1년 정도는 좋았다. 여행도 다니고 쉬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하루가 너무 길어졌다"면서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말했다. 다만 그는 "부산 노인 인구가 70만 명이 넘는데, 노인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쟁률이 20대 1인데, 너무 운 좋게 들어왔다"면서 일자리의 확대를 기대했다. 퇴직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경험도 털어놨다. "퇴직하면 주변인들이 정리된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그렇습니다. 친구들 연락도 줄고요. 그런데 여기 와서 다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술 한잔하고 바람 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육은 그에게 또 다른 보람이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들까지 반응이 정말 좋다"면서 "작은 힘이지만 이런 교육이 쌓이면 미래 환경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래 기억에 남을 비유를 꺼냈다. "여름 지나면 아파트에 선풍기들이 버려집니다. 아직 작동은 되는데 낡았다고 버리는 거죠. 저희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조금은 클래식 해서 그렇지 작동은 잘 됩니다. 이런 역량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장은영 참여자] "노인 아닌 '선배시민'이란 말이 절 흔들었습니다" ▲  우리동네ESG센터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장은영 어르신. ⓒ 보건복지부 인포데스크에서 근무하는 장은영(65세)씨는 도서관에서 37년을 일했다. 퇴직 후 우연히 우리동네ESG센터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는 이곳에서 "다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하면 성장은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기 와보니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같이 일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가족들의 반응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다. 엄마가 밝아지고 건강해졌다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한다"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현재 사회복지학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에 편입했다"면서 "이 일자리가 제 삶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공부하며 접한 '선배시민'이라는 표현을 오래 이야기했다. "노인이 아니라 '선배시민'. 사회 경험과 책임감을 가지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단어가 제 머리를 때렸어요. 저도 선배시민으로 여러분들이 깔아준 이 장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시민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면접 당시 경험했던 장면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면접관 선생님들이 전부 일어나 90도로 인사해주셨어요. 그 순간 정말 존중받는다고 느꼈습니다." [이충남 참여자] "난 뼛속까지 엔지니어... 노발대발 합시다" ▲  우리동네ESG센터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이충남 어르신. ⓒ 보건복지부 장난감수리팀에서 일하는 이충남(67세)씨는 조선소 선박검사 분야에서 일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지금은 고장 난 장난감을 고친다. 그에게 장난감 수리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장난감은 사실 버릴 게 별로 없습니다. 스티커하고 못 쓰는 건전지 정도예요. 나머지는 다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센터 한쪽에는 분해한 장난감 부품들이 빼곡히 정리돼 있었다. 그는 그 부품들로 또 다른 장난감을 고쳐낸다. "이게 진짜 업사이클링이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퇴직 후 찾아온 공허함도 털어놨다. 그는 "몇 달은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싶더라고요"라며 "그런데 여기 와서 아침에 눈 뜨면 다시 갈 곳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뼛속까지 엔지니어"라고 자신을 강조한 그는 "칩 하나 문제로 장난감이 안 움직이면 밤에 잠이 안 와요. 끝까지 고쳐서 다시 움직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의 공동체 분위기를 좋아했다. "젊을 때는 직장 둉료들과 대결(경쟁) 구도로 살아왔었어요. 지금은 같은 동료까리 모여서 서로 칭찬하고 격려합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마무리하며 살아갈지 이야기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 속에서 일한다는 게 너무 기쁩니다. 진짜 진짜 즐겁습니다." 그는 웃으며 친구들과 나눈 말을 소개했다. "우린 '노발대발'하자, '노인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발전이다'라는 뜻입니다." 기후위기와 초고령사회 사이에서 나가야 할 길 ▲  노인역량활용사업인 '우리동네ESG센터' 1호점은 탄소중립과 노인일자리 인식개선, 지속가능한 친환경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한 자원순환 거점센터다. 장난감수리팀에서 장난감 순환(수리·교환·업사이틀링 체험 등) 작업을 하고 있다. ⓒ 유창재 우리동네ESG센터는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장난감을 고치고, 안전손잡이를 설치한다. 겉으로 보면 작은 일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지금 한국 사회가 동시에 마주한 두 가지 과제가 겹쳐 있다. 기후위기와 초고령사회다. 이곳 어르신들은 단지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여전히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환경교육으로 미래세대를 만나고, 누군가는 장난감을 살려내며 자원의 생명을 연장한다. 또 누군가는 주민들을 맞이하며 공동체를 연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노인일자리'라는 말이 조금 작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곳은 노인들의 일터라기보다 사회가 한 번 밀어냈던 경험과 기술, 관계와 존엄을 다시 복원하는 공간에 가까웠다. 한편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조사에서 지난해 노인일자리 참여한 후 인식 변화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감', '스스로 발전하는 기회' 항목에 4.2점 이상(5점 기준)의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15만2000개 노인일자리에 2조 3851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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