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숏폼에서 본 드라마, AI가 어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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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의 AI 시그널] AI 드라마 공장이 가동됐다
[이승환 기자]
▲ 중국의 한 마이크로 드라마 플랫폼.
ⓒ 쇼트맥스홈피
'중국식 AI 드라마 공장'의 부상
스마트폰 세로 화면에 딱 맞는 1~3분짜리 초단편 연속극, 이른바 '마이크로 드라마'가 중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 포맷은 이제 중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성장 분야로 자리를 굳혔다. 중국 전체 영화 박스오피스 수익의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 시장의 특징은 '제작 단가의 극단적 하락'과 '제작 속도의 비약적 단축'이다. 전통 방식으로 15~30일 걸리던 숏드라마 제작은 AI 도입 후 5일 이내로 줄었고, 제작비는 기존의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제작사는 분당 30달러(약 4만 원) 수준의 비용으로 AI 기반 드라마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싼값+속도'의 조합은 창작 현장을 사실상 제조업 공장처럼 바꿔 놓고 있다. 중국에서는 하루 500편, 한 달 수만 편 단위의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생성되고 있다. 지난 1월 한 달에만 하루 평균 470편 이상의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공개됐으며, 3월에는 중국판 틱톡 더우인에만 AI 제작 콘텐츠가 5만여 편 추가됐다. 인기 드라마 차트 100위권에서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전 7%에서 38%로 치솟았다.
텍스트에서 완성 드라마까지
AI 마이크로 드라마 생산은 크게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거대언어모델(LLM)이 인기 소설·웹소설·만화를 분석해 1~2분 단위 에피소드 구조를 자동 설계하는 '스토리·각본 생성' 단계이다.
둘째, 텍스트를 기반으로 인물·배경·카메라 워크까지 자동 생성하는 '영상 합성·캐릭터 생성' 단계이다. 실제 배우 촬영 없이 전편을 생성하는 프로젝트도 이미 등장했으며, 일부는 제작비 65만 원, 제작 시간 48시간이라는 기록도 나왔다.
셋째는 인물별 음색과 감정을 지정해 자동 더빙을 붙이는 '음성·더빙·다국어 현지화' 단계이다. 중국 공영 미디어 그룹(CMG)은 스크립트 생성부터 번역·더빙까지 전 과정을 AI가 담당하는 다국어 마이크로 드라마를 이미 공개했다.
넷째는 클릭률·시청 유지율·댓글 반응을 실시간 피드백으로 삼아 후속 에피소드의 톤과 전개를 수정하는 '배포·AB테스트·리텐션 최적화' 단계이다. 이른바 "AI·시청자 공동 집필" 구조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트댄스의 시댄스(Seedance) 2.0, 콰이쇼우의 Kling 3.0, 셍슈의 비두 등 중국 AI 툴들은 기획–시나리오–촬영–편집–배포 전 과정을 사실상 자동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과거에는 감독·작가·촬영팀·배우가 수행하던 역할 대부분을, 이제는 모델과 플랫폼 알고리즘이 나눠 갖는 형태로 권력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 AI 드라마 공장 생산 단계
ⓒ 이승환
중국 정부와 '콘텐츠 공장' 생태계
중국식 AI 드라마 공장이 빠르게 자리 잡은 배경에는 지방 정부와 국영 미디어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 충칭시는 세로형 콘텐츠 제작을 위해 '량장 영화·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문화창작공원'을 조성해 매년 300개 이상의 제작팀을 끌어 모으고 있다. 저장성 린핑시는 1억 위안 이상을 투입해 중국 최초의 마이크로 드라마 전용 제작 기지를 세웠으며, 세금 감면·GPU 제공·데이터 접근·트래픽 우대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국영 방송사 CCTV와 CMG가 AI로 전적으로 제작한 마이크로 드라마 시리즈를 직접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기관이 AI 드라마를 실험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산업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국가적 전략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국가 라디오·텔레비전 총국(NRTA)은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등록·심사 의무를 강화하며 통제도 병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GPU+데이터+플랫폼+규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타국이 단기간에 모방하기 어려운 폐쇄형 생태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노동·권리·저작권: 공장의 그늘
AI 마이크로 드라마 공장은 비용과 효율의 혁명을 가져온 만큼, 그 이면에는 거대한 노동 재편과 권리 침해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중국 현지 인터뷰에 따르면 단역 배우와 엑스트라를 중심으로 "몇 달 사이 일감이 갑자기 끊겼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한 배우는 구직 기회를 공유하던 단체 채팅방이 조용해졌다며 "마치 비가 오다가 갑자기 그친 것 같다"고 표현했다.
제작비에서 가장 비싼 축이던 배우·촬영 인력이 줄어드는 대신, 프롬프트 엔지니어·AI 작가·영상 합성 오퍼레이터 같은 새로운 직종이 늘고 있다.
동시에 개개인의 얼굴과 목소리가 동의 없이 AI의 학습·합성 재료로 쓰이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진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시청자가 AI 캐릭터에서 실제 배우를 알아볼 수 있다면 초상권·퍼블리시티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기 웹소설·만화·게임을 무단으로 학습·각색한 AI 드라마가 늘면서 저작권 분쟁의 불씨도 커지고 있다. AI가 생성한 대본과 영상의 저작권 주체가 모델 개발사인지, 플랫폼인지, 프롬프트 작성자인지에 대한 법적 기준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이다. AI 공장은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노동시장·인권·지식재산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권리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글로벌 확산과 K드라마에 주는 신호
중국에서 시작된 마이크로 드라마는 이미 미국·동남아를 포함한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번져 나가고 있다. 2025년 1~8월 해외 마이크로 드라마 매출은 15억 2,5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95% 증가했다. 중국계 플랫폼 릴숏은 2024년 한 해에만 해외 매출 4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세로형 연속극을 차세대 포맷으로 보고 전용 스튜디오와 펀드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AI를 도입한 숏드라마 제작을 시작했다. 중국식 물량 공세가 전 세계 알고리즘 피드 상단을 장악할 경우, K드라마의 존재감이 점점 '롱폼 프리미엄' 영역으로 한정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랜드 컨설팅사 헬리오스 월드와이드의 유키 비 CEO는 "중국은 K드라마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대안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저예산으로 쏟아내는 콘텐츠가 하나의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AI 마이크로 드라마가 주는 의미
AI 마이크로 드라마는 드라마 제작을 장인의 영역에서 공장의 영역으로 이끌고 있다. 기획–생산–품질관리–배포 전 과정을 수치화·자동화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영화·드라마 제작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법을 요구한다.
감독과 작가의 감각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클릭률·유지율·전환율 데이터가 IP의 가치 평가 기준이 되어 간다. 반복 시청 패턴과 반응 데이터가 쌓일수록 AI는 "다음에 잘 팔릴 이야기"를 더 정확히 예측하고, 이는 다시 제작 의사결정을 자동화한다.
소수의 초대형 K드라마·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와 달리, 중국식 AI 공장은 수백 개의 소규모 시도 중 일부만 성공해도 포트폴리오 전체 수익이 맞아 떨어지는 구조를 만든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던 배우, 세트 현장에서 움직이던 스태프의 역할 일부가, 키보드 앞에서 프롬프트를 짜고 파이프라인을 설계하는 사람들로 이관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직업이 사라지는 차원을 넘어, 어떤 종류의 창의성이 보상받는가라는 문제를 다시 쓰게 만들 것이다.
개개인의 얼굴·목소리가 동의 없이 AI의 학습·합성 재료로 쓰이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원자재이자 동시에 폭발력 있는 법적 리스크가 된다.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계약서에는 "AI 학습·합성에 대한 권리 조항"이 매우 중요해진다.
"AI 공장"을 배제할 것인가, 흡수할 것인가
각국·각 제작사는 선택해야 한다. AI 공장 시스템을 채택해 저비용 다작 구조로 재편할 것인가, 아니면 AI를 도구 수준으로만 활용하되 인간 중심의 고가치 창작 생태계를 유지할 것인가. 어느 한쪽만이 정답이 되기보다는, "AI 공장으로 버는 돈"과 "프리미엄 창작을 지탱하는 구조"를 어떻게 연결할지가 앞으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AI 마이크로 드라마는 이미 실험 단계를 지났다. 중국이 만든 공장형 콘텐츠 시스템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누가 이야기를 만들고, 누가 그 이야기로 돈을 벌며, 누가 그 과정에서 밀려나는가에 대한 구조적 재편이다. 이 흐름을 얼마나 빨리 읽고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느냐가 앞으로 콘텐츠 산업의 생존을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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