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지방 투자 압박하는 정부 '치적주의'…"인프라부터 노조까지 리스크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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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토론회 앞두고 ‘보여주기식 투자’ 압박…기업들 “확정 안 돼” 신중 반도체 흔드는 ‘정치적 안배’… 핵심 인력 기피·노사 갈등 심화 ‘이중고’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정부가 지난해 12월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계획을 발표한 지 6개월 만에 대기업들을 향한 지방 투자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삼성과 SK 등 주요 그룹 최고경영진들은 오는 29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간담회에서 전남 장성·광주, 충남 온양 등을 명시한 비수도권 투자 계획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형태는 반도체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을 비롯한 여러 형태가 검토되고 있다. 다만 대규모 생산기지 건설은 글로벌 공급망 구조와 인프라, 전문 인력 수급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고도의 경영 판단 영역이어서, 만약 정치적 필요에 의해 투자가 단행될 경우 장기적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규모 생산기지 건설은 글로벌 공급망 구조와 인프라, 전문 인력 수급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고도의 경영 판단 영역이어서, 만약 정치적 필요에 의해 투자가 단행될 경우 장기적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청와대 전경.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특히 삼성과 SK하이닉스는 현재 투자 진행 중인 공장들의 완공 시기도 한참 뒤다. 삼성 역시 평택 공장 완공 시기가 2028년 이후로 공장 가동 후 수요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업의 내부 검토나 이사회 의결이 끝나기도 전에 정권의 치적과 성과를 위해 투자안을 압박하는 구태가 재연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거론되는 호남 지역의 경우 전통적으로 노동조합 세력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돼 기업들의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최근 노조와 성과급 문제로 진통을 겪은 후라 기업으로선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삼성과 SK 측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 공장 건설이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지역 정치권과 지자체는 대기업 공장 유치가 곧바로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하지만, 산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일수록 정주 여건과 교육 환경이 미흡한 비수도권 근무를 기피하는 연구·개발(R&D) 및 고급 엔지니어 인력의 성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핵심 인재 확보 대책 없이 공장 시설만 신설하는 방식은 과거 정권들이 추진했던 수많은 혁신도시와 산업단지가 결국 ‘가동률 저하’나 ‘생색내기용 일회성 투자’에 그쳤던 전례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강조하는 ‘지방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활용’ 명분 역시 전력 계통의 현실을 간과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현재 충남과 호남 지역은 전력 생산량에 비해 송전망과 변전소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전력 계통 포화’ 상태다.
특히 호남의 경우 전력 과부하로 인한 대형 정전을 막기 위해 발전을 강제로 중단하는 ‘출력제어’가 속출하고 있으며, 신규 발전원은 전력망 접속조차 제한돼 있다. 실제로 한국전력이 호남 전역을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하면서 향후 수년간 신규 재생에너지의 전력망 접속이 사실상 차단된 상태다.
또한, 일조량과 풍량에 따라 발전량이 출렁이는 신재생에너지는 단 0.1초의 전압 흔들림으로도 수천억 원의 웨이퍼를 폐기해야 하는 반도체 공장의 기저전력(기본 전력)으로 부적합하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호남에 신규 거점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AI 반도체 라인에 필수적인 대규모 초고품질 전력난은 해결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 거세지는 노동계 리스크… 로봇 등 대안 병행돼야
재계가 비수도권 신규 투자를 꺼리는 또 다른 기저에는 해당 지역의 강성 노동계 지형과 이로 인한 노사 갈등 심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주요 대기업들은 노조의 파업 리스크와 강성 투쟁 기조로 인해 경영상 적지 않은 곤혹을 치른 바 있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경우 글로벌 적기 생산이 생명인데, 노사 관계의 불안은 기업의 생산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리스크로 작용한다. 특히 거론되는 일부 투자 후보지들은 전통적으로 노조 조직력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첨단 공장 유치에만 급급한 정치권은 노조 리스크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심리적·물질적 부담을 전혀 계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정적인 노사 문화 정착이나 기업 친화적 고용 환경 조성이라는 근본적 대책 없이 무조건 투자부터 발표하라는 압박은 기업 입장에서 이중의 리스크를 짊어지라는 요구와 같다”고 꼬집었다.
결국 노조와 협상에 매번 진통을 겪는 대기업 입장에선 이제 공장이 새롭게 들어서더라도 생산현장 주요 자리에 로봇을 배치하는 스마트공장 도입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전 세계 트렌드이기도 하고, 노란봉투법 제정 이후 노조 리스크가 큰 국내 기업 입장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으로 들어설 신공장이 대규모 일자리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정부는 6개월, 전력망은 10년”… 치명적인 인프라 시차
더 큰 문제는 ‘시간의 공백’이다. 대기업이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는 보통 2~3년이 소요되지만,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을 구축하는 데는 주민 수용성 민원과 한전의 재정난 등으로 인해 최소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호남의 남는 전력을 전력 소비가 많은 타 지역 산업단지나 대규모 시설로 송전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핵심 대안이 ‘서해안 해저 송전망(HVDC)’이다. 주민 반대가 적은 바다 밑으로 전력 고속도로를 뚫겠다는 구상이지만, 이 역시 아무리 속도를 내도 1단계 완공 목표 시점이 2030년 이후로 잡혀 있다.
정부는 K반도체 전략 발표 이후 불과 수개월 만에 신규 투자 계획을 공개하라며 사실상 기업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그 공장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해 줄 국가 전력망 인프라 구축에는 10년이 걸리는 심각한 시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학계와 전력 전문가들은 첨단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전력 인프라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대안으로 ‘SMR(소형 모듈 원전)’을 꼽는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최고경영진이 AI 시대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감당할 핵심 카드로 SMR을 연일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SMR은 막대한 건설 비용과 주민 반대가 따르는 대규모 송전탑·선로를 새로 깔 필요 없이, 전력이 필요한 산업단지나 데이터센터 인근에 직접 건설해 24시간 안정적인 무탄소 고품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적 대안이다. 이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전력 확보를 위해 SMR 개발사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거나 장기 전력 구매 계약(PPA)을 체결하는 추세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으로 국가 핵심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도모하려면, 대기업에 특정 지역 투자를 압박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필요한 곳에 SMR을 자유롭게 도입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규제 완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현재 국내 전력 시장은 대기업이 자사 부지에 SMR을 지어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고 전력을 직접 소비하는 구조(직접 PPA 등)나 관련 인허가 절차가 규제에 묶여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안전성이 검증된 SMR의 조기 상용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과 인허가 단축, 유연한 전력 거래 체계 구축 등 규제 혁신이 정부가 풀어야 할 본연의 과제다.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는 “정부가 대기업에 ‘지방 투자’를 압박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지방분권이 아니다”라며 “참된 지역 발전은 중앙정부가 공장을 배급하듯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각 지자체가 규제를 혁파하고 세제를 감면하며 기업이 스스로 찾아오도록 ‘제도 경쟁’을 벌이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내 한 관계자는 "기업의 자율적이고 신중한 투자 결정을 정치적 프레임으로 견인하려는 구태의연한 행정은 부작용을 낳을 뿐"이라며 "정부는 ‘투자 압박’이라는 단기적인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SMR 도입 확대 등 인프라 조성 및 지자체 권한 이양을 골자로 하는 근본적인 규제 개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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