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선거 이후, 민주주의는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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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선거는 끝났지만, 민주주의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선거가 끝난 다음 날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제도이지만, 민주주의는 승자만의 체제가 아니라 패자까지 포함하는 정치 질서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핵심을 경쟁과 참여라고 설명했다. 선거는 경쟁의 과정이지만, 선거 이후의 정치는 참여와 협력의 과정이어야 한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패자가 모든 것을 부정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건강성을 잃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실망, 기대와 아쉬움을 동시에 남겼다. 누구는 환호하고 누구는 침묵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결과를 대하는 태도다. 패배한 쪽은 결과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승리한 쪽은 겸손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는 전쟁이 아니라 공동체의 방향을 정하기 위한 제도적 절차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를 끊임없는 공론장의 형성 과정으로 보았다. 민주주의의 수준은 선거 당일이 아니라 선거 이후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성숙하게 대화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려 한다면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내용은 사라진다. 정치적 다양성은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토대다.
대구는 오랫동안 '보수의 심장'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이번 선거 결과 역시 그러한 정치적 지형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특정 정당의 승리가 곧 지역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정당이 지속적으로 지지받는 지역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책임성(accountability)의 문제'라고 부른다. 유권자는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정당이라고 해서 모든 정책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지지하되 감시하고, 응원하되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대구의 보수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건강한 보수를 지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한 정치적 관성 속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보수는 원래 신중함과 책임,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정치 철학이다. 그러나 보수가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거나, 다른 의견을 배척하며,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에 가까워진다. 보수와 수구를 가르는 기준은 과거를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다. 건강한 보수는 전통을 존중하지만 시대 변화에 귀를 닫지 않는다. 반면 수구는 변화 자체를 위협으로 여기고 자기 진영의 논리만 반복한다.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말했듯이, 진정한 보수는 무조건적인 고집이 아니라 신중한 개혁을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는 태도에 가깝다. 따라서 대구가 진정한 보수의 중심지로 남기 위해서는 정치적 충성심보다 정책의 성과를 먼저 평가하고, 같은 편에게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 없는 지지는 정치인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경쟁 없는 정치는 결국 활력을 잃는다. 건강한 보수는 자기반성과 내부 혁신 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존경받을 수 있다.
지방선거는 중앙 정치의 연장선이면서도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제 시민들의 관심은 승패를 넘어 '청년 유출'과 '대구·경북 행정통합' 같은 당면 현안의 실현 여부로 옮겨가야 한다. 공약이 실제 예산으로 연결되는지, 청년과 노인,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개선되는지, 일부 지역의 소멸 위기 속에서 경제와 교육,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끈질기게 점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선거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민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자란다. 선거의 승패는 잠시의 결과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과 위에서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승자는 겸손하게 책임을 져야 하고, 패자는 성숙하게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시민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평가해야 한다. 대구는 보수의 도시라는 이름에 머물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찰과 혁신을 통해 건강한 보수의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민주주의는 이제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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