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근의 감각지능] 에너지 하베스팅(하), 센서는 말을 줄여야 시장이 된다

작성자 정보

  • 김프로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세 개의 거대언어모델(LLM)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LLM에게 1mJ의 에너지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ChatGPT는 답변 한 번에 소요되는 에너지의 122만분의 1 수준이라 했고, Gemini는 답변 한 단어에 100~500mJ이 필요하다고 했다. Claude는 단호하게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다. 세 답변의 결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1mJ은 LLM에게 거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에너지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다. ChatGPT가 답변 한 번에 쓰는 에너지라면, 잘 설계된 에너지 하베스팅(E/H) 무선센서는 약 2.3년간 버틸 수 있다. 거대 지능에게는 먼지 같은 에너지가, 현장의 말단 센서에게는 긴 생존의 예산이 되는 셈이다. 이 대비는 AI 시대의 에너지 감각을 다시 묻게 한다. E/H 무선센서가 스스로 판단하는 분산 지능을 갖추게 된다면, 데이터센터 중심의 거대 지능과는 다른 새로운 시장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에서도 다양한 극한환경 E/H 실증이 이어졌다. Hitachi Rail(舊 Perpetuum) 제품처럼 철도 진동 에너지 하베스터는 이미 대표적 응용 사례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고속철도용 진동 에너지 하베스터, 화력발전소 배관 건전성 모니터링, 세계 최초로 개발된 LNG 파이프라인 극저온 E/H 무선센서, 전력선 화재감시용 E/H 무선센서 등 다양한 실증이 있었다. 실증은 충분했다. 그런데 시장은 기대만큼 열리지 않았다. 현장이 가르쳐 준 것: 기술보다 어려운 세 가지 벽 현장 적용을 거듭하며 상용화 지체의 이유가 하나씩 드러났다. 발전량이 항상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현장에서는 오히려 에너지가 넘칠 만큼 많았다. 가장 큰 벽은 뜻밖에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배터리와 유선이 포기했던 곳에서 데이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수요처는 활용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첫 용처는 대개 알람이었다. 그러나 알람 시장은 기술이 완전히 성숙한 뒤에야 열린다. 처음 E/H 센서가 데이터를 보내도 “신선한 데모”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EX(Energy-harvesting eXperience), 즉 현장 경험의 축적이 기술 개발만큼 중요하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벽은 결정론적 통신이었다. 중앙에서 모든 판단을 내리는 현행 시스템은 데이터가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도착해야 한다”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전력이 충분히 모였을 때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E/H 센서에게 “매 30초마다 반드시 신호를 보내라”는 것은 물리적 충돌이다. 별도 체계 없이는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지금의 결정론적 통신 구조는 이러한 별도 체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세 번째 벽은 내구성이었다. 극한 환경일수록 발전 에너지는 풍부하지만 구조가 버텨야 한다. 고속열차 대차에 부착한 진동 에너지 하베스터를 실험했을 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하는 동안 단단하다던 SUS 스프링이 반복 충격에 끊어지고 가루처럼 갈려버린 일도 있었다. 극한 환경일수록 발전 에너지는 풍부하지만, 메커니즘이 버티지 못하면 제품으로 발전할 수 없다. 그렇게 축적된 구조 설계 경험이 열차, 영하 162℃의 LNG 파이프라인, 400℃ 이상의 화력발전소 배관에서도 버티는 하베스터 구조로 이어졌다. 반전: 가장 가혹한 곳이 E/H에게는 가장 좋은 곳이다 극한 환경은 센서 회로에게는 가혹하다. 그러나 에너지 하베스터의 입장에서 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LNG 파이프라인의 영하 162℃ 극저온은 배터리에게는 한계지만, 배관 내부와 외부 대기 사이의 온도차(ΔT)는 열전 발전에게 풍부한 에너지원이다. 화력발전소 고온 증기 배관도 마찬가지다. 고속열차 대차의 파괴적 진동은 SUS 스프링을 가루로 만들었지만, 하베스터에게는 강력한 입력 에너지였다. 전력선 주변의 전자기장, 회전체의 반복 운동과 와전류 역시 배터리에게는 위험 조건이지만 E/H에게는 기회의 땅이다. 역설적으로 극한 환경은 E/H의 적이 아니라 동료다. 배터리로 되는 곳에서 E/H를 쓸 이유는 약하다. 배터리가 죽어버리는 곳에서 E/H는 선택지가 아니라 대안이 된다. LNG 배관 상태 모니터링이 그 사례다. 유선 온도센서는 설치·유지보수 측면에서 비경제적이었고, 배터리형 무선센서는 LNG 폭발 위험에 기인한 방폭 구조와 배터리 교체 부담 때문에 적용성이 낮았다. 결국 배관 내외부 온도차를 이용한 열전 자가발전이 해답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온도 측정이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 상태기반정비(CBM)의 영역을 연 사례였다. 이 시장에서 E/H 센서의 경쟁자는 “측정 불가능 상태”이다. 극한 환경이 E/H의 동료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세 가지 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구성 문제는 현장을 이해하면 구조 설계로 넘어설 수 있다. 그러나 결정론적 통신과 활용 체계 부재는 여전히 남는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진다면? 센서에 지능이 생긴다면? 현재 산업 모니터링의 근본 전제는 “판단은 중앙에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센서는 원시 데이터를 끊임없이 올려 보내야 하고, 결정론적 통신이 요구된다. 만약 판단의 일부가 센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분산 지능이 구현된다면 구조가 바뀐다. 인간의 뇌는 손가락 끝의 감각을 24시간 계속 보고만 있지 않다. 중요하거나 새로운 자극이 들어올 때 선택적으로 인지하고 판단한다. 뉴로모픽 컴퓨팅에서 자주 언급되는 스파이킹 신경망(SNN: Spiking Neural Network)은 이러한 선택적 처리 구조를 공학적으로 모사하는 것이다. 뇌가 극도로 높은 에너지 효율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이미지1 [뉴로모픽 SNN 이벤트 구동 방식] E/H 센서에 작은 지능이 탑재된다면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센서는 원시 데이터를 계속 올려 보내는 대신, 스스로 특징값을 계산하고 이상 여부를 판단한다. 정상이면 침묵하고, 이상 징후가 감지될 때만 서버에 알린다. 이렇게 되면 “매 30초마다 반드시 보내라”는 결정론적 통신 요구를 “이상이 있을 때만 즉시 보내라”는 이벤트 구동 방식으로 바꿀 수 있고, E/H 센서의 물리적 충전 사이클과도 더 잘 맞는다. E/H 센서가 단순 알람을 넘어 말단의 1차 판단이 되는 순간, 유선 센서조차 접근하기 어려웠던 극한 환경의 설비 예지보전 영역이 새롭게 열린다. 산업 모니터링에서 대부분의 데이터는 정상 데이터다. 중앙이 99.9%의 정상 데이터를 처리하느라 전력과 자원을 쓰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말단 센서가 먼저 감지하고 걸러낸 뒤 필요한 순간에만 말하는 구조, 이것이 최근 논의되는 '온센서/온디바이스 AI'의 핵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온센서 AI'는 거대 모델이 아니다. RMS, 피크, 주파수 대역 에너지, 온도 변화율 같은 특징값을 보고 “지금은 침묵해도 된다” 또는 “이번에는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를 결정하는 작은 지능이다. 말을 많이 생성하는 지능이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줄이는 지능이다. 돌아보면 E/H 센서의 본래 약속은 배터리와 경쟁하는 전원이 아니었다. 전원선도 어렵고 배터리 교체도 어려운 곳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설비 상태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다만 어느 순간 배터리 대체라는 구호와 발전량 KPI에 묶이면서 본래의 시장 감각을 잃었다. '온센서 AI'는 E/H 센서가 원래 가야 했던 방향을 다시 시장의 언어로 복원하는 계기다. 지난 20년, E/H 연구자들이 집착해 온 KPI는 μW/cm³였다. “나는 이만큼 발전한다”는 연구자 중심의 지표다. 그러나 현장은 다른 것을 묻는다. “한 번 제대로 센싱해 안정적으로 보내려면 그 환경에서 얼마만큼 자가발전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단위가 mJ/min이고, 필자는 초창기부터 이 단위를 주장해왔다. 이제 여기에 한 차원이 더해져야 한다. 하베스팅한 에너지로 몇 번의 유효한 판단을 할 수 있는가. 발전 밀도가 아니라 지능의 가성비가 새로운 KPI가 되어야 한다. 센서는 말을 줄여야 시장이 된다 지능이 없는 센서는 계속 떠들도록 설계되었다. 판단을 중앙에 맡겼으니, 중앙이 판단할 재료를 끊임없이 올려 보내야 했다. 그 관점은 E/H에서 결정론적 통신과 충돌했고, 현장이 준비하지 못한 활용 방식과 맞물리며 가능성만 이야기하게 했다. 그런데 센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상이면 침묵한다. 이상이면 말한다. 그 침묵이 쌓일수록 E/H 센서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넓어진다. 배터리가 없어도, 유선이 없어도, 중앙이 끊임없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곳. 그리고 그 침묵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는 가장 가혹한 환경에서 가장 풍부하게 쏟아진다. 20년 전의 μW/cm³라는 KPI가 발전량의 경쟁을 불렀다면, '한정된 에너지당 유효 판단 횟수'라는 새로운 KPI는 현장의 말단에서 감각과 결합한 지능의 경쟁을 예고한다. E/H의 다음 10년은 더 많이 발전하는 경쟁이 아니라, 더 적게 말하고 더 잘 판단하는 경쟁이 될 것이다. 3GPP Release 19의 Ambient IoT 표준화와 6G의 AI 지향형 통신(AI-native communication) 논의도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한다. 더 많이 보낼 것인가, 더 필요한 것만 판단해 보낼 것인가. 오재근 | 코아칩스 대표이사 국내 최초 SAW 기반 무전원·무선 센서 개발자로, 센서·에너지 하베스팅·산업용 무선 계측 분야를 25년 이상 연구해왔다. '표면탄성파(SAW)를 이용한 에너지 포집형 무전원·무선 센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SAW 무전원·무선 온도 센서 및 극한 환경용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등을 개발·제품화했다. 기아자동차 연구원, 호서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코아칩스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무전원·무선 센서,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및 IIoT 센서를 기반으로 디지털 리트로핏, 온디바이스 AI를 연결한 제조 DX의 현실적 적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최근 댓글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