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수사원'...이용우가 판 '우물'을 나눠 마시는 한국 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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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가 만난 사람] 상법개정 첫 ‘포문’을 연 이용우 전 의원 1~3차 상법개정은 자본시장 작동원리 바로잡은 첫 단계 정관변경 등 기업 꼼수땐 무용지물...제도 정착이 관건
이용우 전 의원은 "사외이사 자격에 '계열사 근무 요건'을 넣는 식의 발상은 독립이사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이런 꼼수를 부리는 기업은 시장에서 '현명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우 전 의원 제공
| 서울=한스경제 최형철 대기자 |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1차),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2차), 자사주 소각 의무화(3차)로 대표된 일련의 상법 개정이 마무리 됐다. 상법 개정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6월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2600선을 맴돌던 코스피 지수가 더블스코어로 수직 상승한데 이어, 올해 한 때 6000선을 넘나들기도 했다. 단군 이래 찾아볼 수 없는 증시 활황이었다. 상법 개정이 주식 시장을 이끈 동력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 이후 처음 열린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자사주 소각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는 각각 5조3000억 원, 4조8000억 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소각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간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상장사는 102개사에 이른다. 금액으로는 15조8000억원 규모다. 최근 3년 추이를 보면 상장기업 전체 자사주 소각 금액은 2023년 4조8000억원에서 2025년 21조4000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시장에서는 올해 말까지 최대 60조원 규모의 소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상법 개정이라는 우물 시공에 첫 삽을 뜨고, 공론화시킨 주인공 이용우 전 21대(2020~2024년) 국회의원을 만났다. 그는 경영 안정성이 위협받는다는 재계와 국내 증시가 외국계 헤지펀드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는 '고장난' 반대 논리를 허물고 상법 개정의 도화선에 가장 먼저 불을 붙였다.
실제 이 전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주주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안 발의에 가장 앞장섰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 이 전 의원이 운영하는 '더하기 경제연구소'에서 만나 상법 개정의 트리거(방아쇠)로서의 소회를 들어봤다. 그는 "한국 자본시장은 형식은 주식회사지만 실질은 오너기업에 가까운 구조"라며 "상법 개정은 자본시장의 작동 원리를 바로잡는 첫 단계"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상법 개정에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역할이 컸다.
"정치를 시작했던 이유 중 하나가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때문이었다.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엉뚱한 규제가 나온다. 작동하지 않는 규제, 규제를 위한 규제 등등이다. 제대로 된 규제를 만들어줘야 시장도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사 충실 의무라는 말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 그런데 SK와 LG의 분할 동시 상장을 보고 '저런 일이 자본시장에서 거리낌 없이 자행된다는 게 말이 되나' 라고 의구심을 갖게 됐다. 비로소 이사 충실 의무 위배라는 공감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상법 개정안 논의를 본격화했다. 1·2·3차 개정이 그 맥락의 연장선이다. 남은 과제는 이 법들이 시장에 착근해 관행으로 정착되는 것이다. 기업들이 '정관 꼼수'로 피해 간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상승중인 코스피 시황. 한스경제
-자본 비용 공시 의무화를 두고 재계는 영업비밀 침해와 공시 부담을 우려한다.
"주총에서 주주들이 CEO와 이사회 의장에게 '회사의 자본 비용은 얼마입니까?'라고 질문해야 한다. 오너들은 대부분 회사채로 100억원을 빌리면 조달 금리 4%를 비용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자기 자본 100억 원의 비용은 얼마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면 '0원'이라고 할 것이다. 공짜 돈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채권에 투자해서 4% 수익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왜 주식에 투자해야 할까? 주식이 채권보다 리스크가 크다. 그러면 채권보다 주식 수익률이 당연히 높아야 한다. 최소 채권보다 두 배, 8%는 돼야 한다. 자본 비용은 영업 비밀이 아니라 경영의 기본이다. 식당을 열어도 임대료와 재료비 같은 비용을 계산하는데, 상장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자기자본비용(COE)이 얼마인지 답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시장의 비극이다. 자본비용보다 낮은 수익률을 내는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면, 그 돈은 기업이 쟁여둘 게 아니라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용우 전 의원은 국가대표 축구팀의 사례를 통해 자본 배치와 기회비용의 개념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국대 선수들은 각자 소속 리그에서 보여주는 득점 확률과 높은 몸값을 가지고 있다. 기업으로 치면 '비용이 발생하는 자본'과 같다. 따라서 이 팀을 가동한다면 산술적으로도 일정 수의 골을 기대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기회비용 측면에서의 최소 기대치다. 감독(CEO)에게 고연봉을 주는 이유는 팀원(자본)을 최적의 조건에 맞춰 최대 성과를 내도록 관리하라는 것이다. 효율적인 자본 배치는 '1승 3무를 하겠다'거나 '득실차를 고려해 특정 팀을 상대로 다득점을 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해 성과를 내는 과정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미국의 보잉·GM처럼 기업 R&D와 장기투자 재원을 고갈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보잉과 GM이 주주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시안적인 CEO들의 탓이 크다.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지배 구조 실패로 봐야지, 주주 환원의 결과가 아니다. 자사주라는 자본을 창고에 넣어두는 것도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쟁여두는 것 자체가 자본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기회비용이다. '투자할 재원이 없다'는 말은 주주를 설득할 아이템이 없다는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국제회계기준(IFRS) 아래에서 자본 변동성을 줄이는 용도로 쓰거나, 주식 보상 재원으로 활용하는 등 자사주를 보유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다면 주주들에게 설명하면 된다."
-지배구조 개혁이 단기 수익을 쫓는 행동주의 포퓰리즘에 휘둘릴 가능성은 없을까?
"행동주의 펀드 중에는 단기 주가 부양에만 집중하는 곳도 있다. 그러면 시장의 평가도 뒤따른다. 주주들은 '올해는 좋은데 다음에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최근 행동주의 캠페인을 보면 중장기 성장 경로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기초 자산을 초과하는 부분은 주주에게 환원하는 매커니즘을 설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가 망하길 바라지 않는다. 주주의 위임을 받은 경영진이 합리적으로 자본을 배치하고 설명할수 있어야 한다. 갈등 구도로 볼 사안이 아니다."
-효성중공업처럼 정관 변경으로 집중투표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안건 처음 봤을 때 '도대체 이걸 누가 올렸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회 내에서 그런 주총안건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다면 이사회 의장이 그 사람부터 제대로 지적했어야 했다. 시장의 흐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한 채 오너에게 충성 경쟁만 한 결과다. 덕분에 시장에서는 반면교사가 됐다. 그런 꼼수를 쓰지 말라는 것, 그게 상법 개정의 효과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과 오남용 방지 방안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처음엔 사법부에서 반대했다. 찬성으로 바뀐 게 2020년 무렵이다. 사법 개혁 논의와 함께 증거재판주의가 강화되는 흐름을 탔기 때문이다. 2022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녹취록을 법정에 제출하려면 상대방 변호사 입회하에 반론권도 보장해야 한다. 일방적인 녹취는 증거 능력이 없다. 명백한 범죄혐의도 적법한 증거 수집이 아니면 인정되지 않는다. 또 영장에 명시되지 않은 방식으로 수집한 증거도 마찬가지다. 디스커버리는 이 흐름의 연장선이다. 서로 증거를 다 공개하고 시작하자는 거다. 공개하면 재판이 빨라지고, 합의가 빨라지고, 불필요한 비용이 줄어든다. 기업이 기밀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법원이 적절히 조율하면 된다."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를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 노하우를 흡수해야 한다고 했는데?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한 준칙)를 직접 하겠다고 하지만, 개별 케이스를 다루기엔 펀드 수가 너무 많다. 인력도 부족하고, 전문성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한테 맡기는 거다. 검증된 행동주의 펀드 두세 곳을 선정해서 자금을 집행하고, 그 결과를 조직에 내재화하면 된다. 일종의 메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내부 인력은 그 과정을 통해 배우면 된다."
-논란이 된 금투세에 대한 입장은?
"전제가 잘못됐다. 미국에서 주식 장기 보유 시 양도세를 깎아주는 인센티브가 작동하는 이유는 금투세 즉, 자본이득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금이 있어야 깎아주는 인센티브도 설계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금투세 자체가 없다. 그러니까 금투세 도입과 주식 양도소득세 조정을 먼저 논의하고, 그 위에서 장기 보유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순서가 맞다."
-올해부터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가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 확대됐다. 낙후된 기업의 체질 개선을 강제할 실질적인 유인책은?
"공시는 일종의 시험지다. 시험을 한 번도 안 보던 학생들이 처음 시험을 받는 거다. 성적표를 받아보면 자기 위치를 돌아보게 된다. 그게 체질 개선의 출발이다. 법이 너무 강하게 강제하는 것보다, 틀을 만들어 유도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공시 후 피드백, 등급 반영, 시장의 평가. 이 사이클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낙후된 기업도 변할 수밖에 없다."
-미국식 이사회 중심주의가 한국의 지배주주 체제와 충돌한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이미 과정을 겪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현대를 키운 게 1·2세대 CEO들의 동물적인 감각이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 그에 맞춰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후계자에게 남긴 말이 있다. '회사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자본 배치를 알아서 잘 하라'는 거였다. 정답은 버핏 자신도 모른다. 찾아가는 과정에서 답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 자본시장에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용우는 누구?
196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 책임자를 거쳐, 2016년 카카오뱅크 공동대표를 맡아 우리나라 최초 인터넷은행의 설립을 이끌었다. 2020년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7호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갖고 있던 카카오뱅크의 스톡옵션 52만주(시가 100억~200억원)를 포기해 큰 화제가 됐다. '사회적 공물(公物)은 공물이고 정치는 헌신인데, 봉사할 기회가 온 것이 더 소중하다'는 믿음 때문에 스톡옵션을 포기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개혁입법 평가'에서 3년 연속 경제분야 1위를 차지했다. 현재 '더하기 경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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