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규제, '공시'에서 '공급망 실사'로 확산"

작성자 정보

  • 김프로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OECD는 ‘사회·환경 실사 법제의 보고 요건’ 보고서에서 ESG 규제가 지속가능성 공시를 넘어 공급망 실사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ESG 관리 체계를 설명하는 단계에서 특정 제품과 거래가 인권·환경 리스크와 무관하다는 점을 증빙하는 단계로 요구 정보가 달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경ESG] 싱크탱크 리포트 13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파리 OECD 본부. 사진=연합뉴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의 무게중심이 자본시장 공시에서 공급망 실사로 이동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글로벌 시가총액의 91%에 해당하는 기업이 ESG 정보를 공시하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무역량의 절반가량이 공급망 실사 규제의 영향권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ESG 규제가 기업 단위 공시를 넘어 제품·거래 단위 증빙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OECD가 2026년 4월 발간한 보고서 <사회·환경 실사 법제의 보고 요건(Reporting requirements in social and environmental due diligence legislation)>은 이런 흐름 속에서 기업의 ESG 규제 대응 부담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ESG 공시와 공급망 실사는 모두 기업의 ESG 정책, 위험과 영향, 대응 전략 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공급망 실사는 제품·거래 단위로 실사 범위와 위험 판단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실사와 관련한 정보 수집과 보고 절차가 충분히 표준화돼 있지 않은 점도 기업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ESG 공시는 기업의 ESG 관련 위험과 기회 관리 체계를 투자자와 시장에 설명하는 제도에 가깝다. 기업이 기후변화, 노동, 인권, 생물다양성 등 주요 현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어떤 목표와 지표를 적용하는지를 공개하는 방식이다. 투자자와 이해관계자가 기업의 ESG 관리 수준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공급망 실사는 거래와 관련한 특정 제품이나 원재료가 강제노동, 산림훼손, 분쟁광물 등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요구한다. 기업이 인권·환경 정책을 갖췄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제품이 어떤 원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됐는지, 어떤 협력사를 거쳤는지 등 구체적 자료가 필요하다. ESG 공시가 기업 단위의 설명이라면, 공급망 실사는 제품과 거래 단위의 증빙에 가깝다는 게 OECD의 설명이다. 공급망 실사, 하위 단계 갈수록 비용 부담 커져 분석 범위도 다르다. ESG 공시는 주로 기업 전체나 사업부 단위로 이뤄진다. 반면 공급망 실사는 특정 제품, 원재료, 협력사, 생산지까지 범위가 확대된다. 예컨대 유럽연합(EU) 산림전용방지규정은 회사 경계를 넘어 제품 생산지의 지리 정보까지 요구한다. 이런 변화는 기업의 대응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ESG 공시에서는 보고 기준 해석, 보고서 작성, 외부 검증, 내부 지표 정비 등에 주로 비용이 발생한다. 공급망 실사에서는 여기에 협력사 데이터 수집, 원산지 추적, 인증, 물류·통관 자료 관리 등에 추가 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특히 보고서는 여러 국가의 법과 기준이 비슷한 정보를 요구하면서도 제출 형식, 시점, 데이터 구조가 서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 같은 정보를 여러 제도에 맞춰 다시 가공해 제출해야 한다. 공급망 실사는 공급망 하위 단계로 갈수록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보고 의무를 지는 대기업이 협력사와 원재료 공급자로부터 정보를 받아야 실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중소 협력사는 원산지, 노동환경, 환경관리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보고서는 이런 구조가 공급망 후방에 속한 기업의 행정 부담과 감사 피로를 키운다고 분석했다. 데이터를 모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기업의 부담을 키운다. OECD는 기업의 실사 보고가 여전히 정책과 절차 설명에 치우쳐 있으며, 실제 예방·완화·구제 조치가 어떤 결과를 냈는지 보여주는 정보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협력사 교육 횟수보다 교육 이후 노동 관행이 개선됐는지, 고충 처리 절차의 존재보다 피해 구제가 실제로 이뤄졌는지, 산림훼손 위험 지역 확인보다 해당 위험이 줄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제품 기반 규제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원산지, 지리 정보, 거래 증빙, 운송 서류, 인증 자료는 제품 추적에 필요한 정보다. 그러나 추적 가능성이 곧바로 인권·환경 리스크 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정 지역에서 생산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과 해당 지역의 강제노동·환경훼손 위험을 낮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기업은 제품 추적 자료와 함께 위험 완화 조치의 효과까지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표준화 안 된 실사 규제…협력사 부담 커진다 공급망 실사 강화 흐름은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U 공급망실사지침(CSDDD)은 2029년 7월부터 본격 적용된다. EU 내 매출이 15억 유로(2조6200억 원)를 넘는 비EU 기업은 직접 규제 대상이 된다. 직접 대상이 아닌 한국 기업도 EU 대기업의 공급망에 포함된 경우 실사 자료 제출과 리스크 관리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배터리, 자동차, 전자, 섬유, 식품, 철강, 화학 등 글로벌 공급망 비중이 높은 업종은 공급망 실사 규제의 영향권에 들어갈 전망이다. 제품 단위 데이터가 부족할 경우 해외 구매자의 납품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통관 지연, 수입 제한, 거래 배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 내부 대응 체계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OECD의 설명이다. 공급망 실사는 ESG 부서의 보고서 작성 업무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구매, 조달, 법무, 통상, 품질, 물류, 정보기술(IT) 부서가 같은 데이터 체계를 공유해야 한다. 협력사 정보, 원산지, 감사 결과, 개선 조치, 인증 자료가 흩어져 있으면 규제가 강화될수록 대응 비용이 커질 수 있다. OECD는 정책당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각국 정부가 실사 법제 간 공통 개념을 정리하고, 공동 해설서와 통합 보고 양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기업이 실사의 효과를 설명할 수 있도록 정량·정성 지표를 제시하고, 공급망 데이터가 여러 제도에서 재사용될 수 있도록 교환 형식과 절차를 표준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지속가능성 공시와 공급망 실사를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G 공시가 자본시장에 기업의 ESG 관리 체계를 설명하는 제도라면, 공급망 실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과 거래의 적합성을 증빙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업의 ESG 대응 역량은 보고서 완성도뿐 아니라 공급망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고 일관되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승균 기자 [email protected]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