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 진짜 이스라엘 후손일지도”... 주원준 박사가 던진 역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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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영토 분쟁의 중심지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지를 둘러싼 역사적 연고권 논쟁이 고대 근동학의 시각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한님성서연구소 주원준 수석연구원은 최근 역사학적 고증과 성서 기록의 대조를 통해, 이스라엘이 해당 영토에 정착하게 된 과정은 흔히 알려진 '민족적 정통성'보다는 기원전 12세기의 거대한 문명적 공백이 낳은 '지정학적 틈새'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기원전 12세기는 이른바 '바다민족'의 대침공으로 인해 기존의 강력한 도시 국가 체제가 완전히 붕괴된 '파괴와 단절'의 시기였다. 당시 고대 근동의 패권국이었던 히타이트가 멸망하고 이집트의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발생한 거대한 권력의 진공 상태가 이스라엘과 같은 신생 민족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무주공산'의 배경이 됐다. 주 연구원은 "강대국들이 서로를 견제하던 질서가 무너진 후, 그 전까지는 이름조차 없던 후발 주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시대적 행운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히브리(Hebrew)'라는 명칭 역시 고대 문헌상에서는 민족이 아닌 사회적 계층을 뜻하는 단어에서 기원했다. 고대 근동 전역의 아카드어 문헌에 등장하는 '하피루(Hapiru)'나 이집트어의 '샤슈(Shasu)'는 당시 도시에 정착하지 못한 부랑아, 쫓겨난 노예, 혹은 유랑 도적 떼를 일컫는 하층민의 대명사였다. "하피루는 민족 이름이 아니라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부르는 하빠리 정도의 표현이었다"고 설명한 주 연구원은, 이러한 소외 계층이 결집하여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로 발전한 것이 역사의 실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된 '메르네프타 승전비'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기원전 1210년경 제작된 이 비석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최초의 문헌으로 파라오 메르네프타가 가나안 지역의 여러 민족을 복속시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국가'나 '도시'가 아닌 '백성(무리)'을 뜻하는 정관사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영토 국가를 세우기 이전의 유동적인 공동체였음을 시사한다. 주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그 땅에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임과 동시에, 그들이 처음부터 그 땅의 주인이 아니라 이주해 들어온 무리였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특히 현대 갈등의 핵심인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유전학적·고고학적 관점에서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기원전 12세기경 지중해 해안가 평야 지대를 먼저 점령했던 이들은 페니키아 계열의 필리스티아(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으며, 성서 기록상으로도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밀려 산간 지역에 겨우 정착한 후발 세력이었다. 주 연구원은 "2000년 전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져 외모와 인종이 변하는 동안, 오히려 그 땅을 떠나지 않고 대를 이어 살며 이슬람화된 이들이 현재의 팔레스타인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즉, 유전학적 원류를 따지자면 현재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이 고대 이스라엘인의 후손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역설적인 분석이다.
메르네프타 석비 / 출처. 위키피디아
이와 더불어 이스라엘이 유일신 신앙을 확립해 나간 과정 역시 주변 강대국들의 종교 문화를 지워나가는 '처절한 신학적 투쟁'이었다고 평가했다. 창세기 1장에서 요일의 이름을 숫자로 명명한 것은 당시 달신(Sin)이나 태양신을 숭배하던 수메르 전통의 흔적을 제거하고 유일신 야훼만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노력이었다. 주 연구원은 "무단횡단 금지 표지판이 있는 곳에 무단횡단이 많듯,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 많은 것은 그만큼 당시 사람들이 주변의 다양한 신들에게 경도되어 있었음을 반증한다"는 통찰을 전했다.
주 연구원은 고대의 파편화된 역사를 현대의 영토 분쟁이나 전쟁의 명분으로 무리하게 소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는 당시의 복잡한 구조와 갈등을 배우는 거울로 삼아야지, 3000년 전의 기록을 현재 땅의 주인을 가리는 절대적 근거로 삼는 것은 지식인과 종교인이 피해야 할 일"이라고 역설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역사와 신화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현실 속에서, 고대 근동학이 전하는 메시지는 역사를 정치적 도구가 아닌 인간사의 보편적 고난과 극복의 과정으로 바라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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